[대지진…일본 경제가 멈췄다] 삼성·LG, 일본출장 자제령…기업들, 비상 시나리오 경영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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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기업 움직임
구본준 부회장, 대책반 진두지휘
삼성, 반도체·LCD 부서 대기령
SK, 임원 주말 출근…상황점검
포스코硏, 철강업체 피해 조사
원자재·유가 폭등·대지진 변수…사업계획 전면 수정 불가피
일본 대지진으로 국내 주요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일본 산업계 마비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국내 기업들도 부품 조달 등에서 심각한 피해를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요 대기업들은 구매,영업,금융,기획 부서 담당자들을 중심으로 비상 대책반을 꾸리고 상황 파악과 함께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요 기업들이 연초에 세운 사업 계획을 전면 재수정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자재와 유가 폭등에 일본 대지진이라는 변수가 추가된 만큼 국내 산업계에도 '시니리오 경영' 도입이 불가피해졌다는 설명이다. ◆기업들 일제히 비상대책반 가동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주말인 지난 12~13일 양일간 일본 대지진 비상대책반을 진두지휘했다.
일본 현지법인과 직원들의 상황,부품 조달 상황 등에 대해 연일 직보를 받고 있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들의 안전 문제를 감안해 지진 피해가 집중된 도쿄 인근 지역으로의 출장을 금지키로 했다"며 "지진과 상관없는 지역으로의 출장도 가급적 자제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일본 부품 공급선의 상황 파악을 위해 반도체와 LCD(액정표시장치) 사업부 구매담당 직원들에게 비상 대기령을 내렸다. 상대적으로 일본 의존도가 높은 부품 부문에 피해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본 출장을 최대한 자제하라는 지시도 떨어졌다. 일본 출장 전 담당 부서 임원은 물론 인사팀에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SK그룹은 주말인 12일 김영태 SK㈜ 사장 주재로 그룹 차원의 비상 대책 회의를 가졌다. 일본 대지진이 세계 금융 시장 등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분석하는 회의였다.
주력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네트웍스도 해외 시장 담당 임원들이 주말에 출근,시장 상황을 점검했다.
◆"올해 사업 계획 전면 수정해야"올해 초 대기업들의 관심사는 세계 경기였다. 경기 이외에는 이렇다 할 복병이 없는 만큼 지난해 못지않은 호황을 기대하고 있다는 게 당시 주요 기업들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른 돌발변수들이 속속 등장하는 분위기다.
우선 연 평균 배럴당 90달러 선으로 예상됐던 유가가 100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다. 유가는 앞으로 상당기간 강세를 보일 전망이다. 이집트와 리비아의 민주화 시위가 다른 산유국으로 확산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관련업계의 설명이다. 원자재 수급도 비슷한 상황이다. 구리,고무 등을 중심으로 예측 범위 이상으로 값이 오르면서 국내 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 대지진이 유가 및 원자재 가격 급등 이상의 파괴력을 나타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본에서 첨단 부품과 소재를 수입해 가공한 후 중국에 판매하는 동아시아 공급망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전자나 자동차 업종 기업들은 부품 조달에 문제가 없는 마지노선을 1~2개월로 보고 있다"며 "3개월이 넘어가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바빠진 기업 산하 연구소
이에 따라 주요 대기업들은 연초 사업계획을 폐기하고,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경영 방침을 바꾸는 시나리오 경영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한국 산업계는 전통적으로 일본 산업계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며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연간 사업계획은 물론 중장기 공급망 확보 계획까지 수정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SK그룹 관계자도 "SK 계열사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4개월 단위로 사업 계획을 세우는 시나리오 경영을 하고 있다"며 "일본 대지진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생긴 만큼 시나리오의 단위를 2개월 수준으로 잘게 쪼갤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산하 연구소에도 비상이 걸렸다. 사업계획 수립을 위해서는 일본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포스코경영연구소는 14일부터 일본 지진 관련 조사반을 꾸려 현지 철강업체들의 피해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일본 대지진이 동아시아 지역 철강재 유통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과 향후 철강재 가격 변화 등의 이슈를 집중적으로 분석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