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일본 경제가 멈췄다] 車·전자 핵심부품공장 정지…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흔들

전세계 산업계 쓰나미

日 부품-韓 중간재-中 완제품…동북아 3각 분업구조 위태
닛산·혼다 공장도 생산 멈춰…GM 등 글로벌 車업계 직격탄
도시바 플래시 공장 가동 중단…애플, 아이패드 생산차질 우려
일본은 전 세계에 연간 5조6000억엔(700억달러) 규모의 자동차 부품을 수출한다. 미국 GM을 비롯해 주요 자동차 업체들과 도요타 등 일본 기업의 해외 공장들이 일본산 부품을 받아 쓴다. 일본을 덮친 강진으로 이런 글로벌 부품 공급과 생산체계가 끊길 위기에 처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도요타조차 부품 조달이 어렵다는 이유로 지진 발생 나흘째인 14일 일본 전역에서 조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애플 아이패드에 들어가는 낸드 플래시의 3분의 1가량을 공급하는 도시바도 공장 가동을 멈췄다. 도시바는 세계 2위 낸드 플래시 메모리 생산업체로 전문가들은 향후 '스마트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 산업계 대부분이 멈춰서면서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전 세계 산업현장이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일본(부품 · 소재)→한국(중간재)→중국(완제품 조립)→세계 소비시장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분업구조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멈춰선 일본의 공장들

일본 산업계의 피해는 복구 장기화를 우려할 정도로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1위 자동차업체인 도요타는 국내 5개 공장과 12개 부품 공장 등 일본 전역에서 조업을 중단한다. 닛산도 도후쿠 지역에 있는 공장 등 5개 조업장의 가동을 중단한 채 부품 조달 체계가 복구될지 여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혼다자동차는 도시키현에 있는 연구소의 천장과 벽이 지진으로 무너지면서 1명이 숨지고 30여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빅3'가 흔들리자 미국에서도 긴장의 기미가 역력하다. 한종백 KOTRA 디트로이트센터장은 "GM,포드,크라이슬러 등 주요 자동차 업체 대부분이 글로벌 아웃소싱을 확대하면서 일본산 부품을 상당량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입장에선 자동차 수입에서도 차질이 예상된다. 일본 3개 브랜드의 전체 수출 물량에서 미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31%에 이른다.

도시바의 플래시 메모리 공장이 생산을 중단하는 등 전자업계의 피해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가장 긴장하는 기업은 애플이다. 도시바는 '아이패드'를 비롯해 애플의 '맥북에어'에도 SSD(솔리드스테이드드라이브)를 공급한다. 세계 전자부품 1위 기업인 무라타제작소도 가동 중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MLCC(적층세라믹콘덴서)는 모든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이다.

일본 석유화학 공장들은 절반가량이 '셧 다운' 상태에 빠졌다. 플라스틱 제품의 필수 원료인 에틸렌의 경우 대략 400만t에 해당하는 설비가 가동을 멈췄다. 김평중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 조사본부장은 "지난해 에틸렌 생산량이 780만t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피해"라며 "게다가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이 정기 보수를 앞두고 있어 적어도 4월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공급 부족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일본발(發) 플라스틱 제품 가격 상승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에서 생산된 에틸렌은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돼 현지에서 완제품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 시장으로 보내진다.

◆글로벌 분업구조의 핵심 고리 위태

일본 산업계의 붕괴가 우려스러운 이유는 일본이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정혁 KOTRA 일본사업처장은 "특히 동북아 지역에서는 일본을 중심으로 중국,한국을 잇는 분업체계로 돌아가고 있다"며 "일본에서 핵심 부품과 소재를 보내면 한국에서 중간재로 만들고 이를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완제품으로 조립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일본이 독점하고 있는 부품들도 상당하다. 플라즈마용 유리기판은 아사히글라스와 일본전기초자가 각각 전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70%,30%를 차지하고 있다. 액정용 복층 도금기판은 스미토모금속이,휴대폰 카메라 렌즈 수지는 일본제온이 각각 전 세계 물량의 90%를 생산한다. 액정 편광판 보호필름,탄소섬유 역시 일본이 없다면 공급 대란이 빚어질 품목이다.

한국만 해도 매년 대일무역역조 현상이 빚어질 정도로 일본에서 주요 부품 · 소재를 수입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서 들여온 전자부품은 68억달러에 달한다. 석유화학(46억달러) 정밀화학(45억달러) 등도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전문가들은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주요 제조업체 대부분이 부품 재고를 최소화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앞으로 문제가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허영호 LG이노텍 사장은 "정보기술(IT) 분야만 해도 글로벌 생산벨트에 포함된 기업들은 일본 산업계의 피해 복구가 언제 마무리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사태가 조금이라도 장기화된다면 연쇄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