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etter life] 욱하는 순간 판단 실수…감정 표출은 '이성의 제어' 뒤따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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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태어날 때,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나라가 망했을 때 세 번 운다'는 말이 있다. 정말 평생 세 번만 우는 남자는 없겠지만 그만큼 남자는 눈물에 인색한 편이다. 웃음도 마찬가지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무뚝뚝하다. 이는 타고난 성격 때문일까,사회적 학습 때문일까. 과연 슬픔이나 기쁨 같은 감정을 이성으로 억누를 수 있을까.

최근까지 우리가 이성이 지배한다고 알고 있었던 인간의 판단 영역들이 실제로는 감정이 모종의 역할을 한데 따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도덕적 판단이다. 그동안 '도덕=이성'이라는 게 통념이었다. 그러나 2001년 심리학자 조슈아 그린은 실험을 통해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서 이성보다는 직관적인 감정이 도덕적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뇌활성 연구에서도 정당성 판단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감정이 핵심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성이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모르는 곳에서 감정이 우리를 조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성에 억눌린 감정을 표출해야만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업무와 각종 인간관계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분노,슬픔 등을 꾹 참고만 살아온 직장인들에게는 '자기 본능에 충실하라','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져라' 같은 조언은 꽉 막힌 감정의 분출구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지나친 감정의 분출은 판단을 흐리게 하고 일상생활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분에 취하거나 분위기에 휩쓸려 잘못된 결정을 하거나 다른 사람과 시비가 붙는 등 후회했던 경험을 가졌을 것이다. 또 감정,기분 조절이 병적으로 어려워지는 우울증이나 기분이 계속 고양되는 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

감정에 휩쓸려 행동하고 후회하게 되는 경우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뇌파 활동도를 측정해보면 긍정자극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뇌파 활동을 보이지만 부정자극에는 확연하게 뇌파 활동이 떨어진다. 즉 감정이 앞서면 외부 정보의 선택과 판단에서 자기에게 유리하고 긍정적인 면만 보게 된다. 게다가 감정이 격해질 때는 순간 위험을 무릅쓰게 되고 충동적으로 결정하기 쉽게 된다. 따라서 평소 '기분파'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감정의 유혹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판단이 잘 서지 않으면 자신의 감성과 직관을 따라가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전에 내 감정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느 정도로 나의 활동을 지배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이성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적당한 감정의 표현은 정신건강에 좋다.

그러나 감정 표출엔 이성의 제어가 따라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그래도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다.

조현상 <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