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일본 경제가 멈췄다] 유동성 공급, 고베 대지진 때의 36배…엔화 부족 '긴급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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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銀 18조엔 방출 왜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14일부터 18조엔 규모의 자금을 풀기 시작했다. 원화로 환산하면 247조원에 이르는 대규모다. 대재난에 휩싸인 일본의 가계와 기업이 현찰을 찾고자 은행으로 몰려 자칫 유동성 부족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美 2차 양적완화의 37% 규모…오르던 엔화값 하락 급반전
엔화 약세 1~2년간 지속될 듯…달러 강세에 원화 환율 올라
이로 인해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엔화 강세(엔 · 달러 환율 하락) 흐름이 일순간에 약세로 돌아섰다. 미국 달러가 강세로 바뀌다 보니 한국 원화도 약세(원 · 달러 환율 상승)로 반전됐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경기 흐름이 상당히 다른 만큼 엔화 약세와 달리 원화는 강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고베 대지진 때와는 달라
1995년 1월17일 일본 고베 대지진이 발생하자 BOJ는 다음날 5000억엔 규모의 긴급 유동성을 지원했다. 이후 4월과 9월 각각 정책금리를 내려 9월엔 당시 사상 최저 수준이었던 연 0.5%까지 낮췄다.
고베 대지진 발생 이후 엔 · 달러 환율은 4개월 동안 강세가 이어졌다. 외국으로 나갔던 일본 자금이 본국으로 되돌아오는 이른바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나타난 데다 보험금이 유입된 결과다. 엔 · 달러 환율은 대지진 발생 당시 달러당 100엔 수준에서 그해 4월 중순엔 80엔 초반까지 하락했다. 이번 일본 동북부 대지진이 발생하자 유사한 흐름이 나타나는 듯했다. 대지진 발생 당일인 지난 11일 엔 · 달러 환율은 한때 83엔 이상으로 올랐지만 이내 하락세로 돌아섰다. 14일 오전에도 엔 · 달러 환율은 추가 하락해 81엔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BOJ가 대규모 지원 조치를 발표하자 오름세로 돌아서 82엔대로 올라섰다. ◆엔화 상당 기간 약세 이어질 듯
이번에 BOJ가 발표한 유동성 지원 규모는 고베 대지진 당시와 비교하면 36배에 이른다. 미국 달러로 환산해서도 2200억달러에 달한다. 미국이 지난해 11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2차 양적완화(중앙은행이 경기회복을 위해 돈을 푸는 것) 규모 6000억달러의 37% 수준이다.
이 정도의 자금이 풀리면 일본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엔캐리 트레이드가 일부 청산되고 보험금이 일본으로 유입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달러 약세폭보다 엔화가 풀려 나타나는 엔화 약세폭이 더 크다는 얘기다. 이주열 한국은행 부총재는 이날 국회 보고에서 "엔화 약세가 더 진행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우선 일본은 미국 유로존과 비교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회복 속도가 더디다. 지난해 4분기 일본의 성장률은 전기 대비 연율 기준으로 -1.1%였다. 미국의 전기 대비 연율 2.8%는 물론 유로존의 0.3%(전기 대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여기에다 이번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이 1% 가까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마저 대두되고 있다. 향후 1~2년간 엔화 약세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상당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장기적으로 원화 강세 전망원 · 달러 환율은 이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일 것이란 게 국내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한결같은 진단이다.
김성순 기업은행 차장은 "이날 원 · 달러 환율이 일시적으로 1130원 이상으로 뛰었지만 오래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한국 등 신흥국 통화가치가 강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지난해 6% 이상 성장한 데다 올해도 4~5%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게 배경이다.
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글로벌 경제의 회복이 둔화된다면 미국 및 유로존의 정책금리 인상 시기가 늦어져 한국 등 신흥국으로 자금이 다시 흘러들어올 것이란 진단도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