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인문학으로 풀어냈죠"

서용선 씨 학고재화랑서 작품전
서울 소격동 학고재화랑에 들어선 관람객들은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미국 뉴욕인가 싶더니 이내 호주 멜버른,독일 베를린인 것 같고 오방색의 풍경화에 흥겹다가 어두운 색감의 인물화,사람 조각에 놀란다. 중견작가 서용선 씨(60)의 작품들이다.

2008년 서울대 미대 교수를 그만두고 경기도 양평 작업실에서 그림에만 몰두해온 그는 "역사 속에 파묻힌 인간의 부조리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며 "이번 전시 제목을 '시선의 정치'로 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몸으로 작업한다고 했다. "예전엔 뭔가를 그려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지요. 몸의 떨림이 붓질이 돼 화면을 쟁기질하고 캔버스의 울림이 다시 몸에 전해질 때는 가슴마저 울렁거립니다. "

그는 자연의 흔적이란 표현도 썼다. 빛과 그림자로 어우러진 중간톤의 원색으로 자연의 진면목과 현실의 이면을 드러내려 한다는 것이다. "빛에만 집착한 인상파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죠.과장이나 감상주의보다는 경험,짓이겨진 자연의 흔적들을 작업 속에 담아낼 때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거든요. "

그는 작년에 미국과 유럽 도시를 여행하며 느낀 것을 몸속에 담아 화면에 옮겼다. "뉴욕은 다이내믹하고,멜버른은 에로틱하며,베를린은 드라마틱해요. 이 도시들의 감흥으로 제작한 것들이 전시장에 모여 있죠.도시의 색깔들이 저를 유혹해 끌어당기면 저는 그들을 받아들여 새롭게 매만지지요. "옛 동독과 서독이 공존했던 베를린에 특히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의 작품들에도 우리의 분단 현실이 오버랩돼 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드나들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였던 검문소 '체크포인트 찰리'가 지금은 박물관이 돼 관광객을 맞고 있더군요. 과거의 산물이 이제는 기념물이 된 독일과 우리의 현실을 비교하며 작업을 했어요. "

베를린의 건축물과 각종 기념물도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옛 동독의 베를린 성당,브란덴부르크 문과 티어가르텐(베를린의 공원),국회 건물 등 독일 역사에서 느껴지는 육중함과 장중함을 그대로 관람객에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

서씨는 그동안 역사적인 사건을 주제로 한 인물화와 양평 청령포 강진만 등 자연 풍경,현대 문명이 집약된 도시 풍경을 그려왔다. 인물화 분야에서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시는 내달 10일까지 이어진다. (02)720-152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