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1) "연구실에 남아봐야 미래 없다"…醫大로 빠지는 이공계 두뇌들

● 과학·기술 인재 10만명 키우자… (1) 이공계 잔혹사

대학원 연구실에 들어가도 월급은 고작 50여만원
서울대 공대 자퇴·제적생…10년간 1136명 '단과대 최고'
연대 물리학과 2011년 정시 20명 뽑았지만 5명만 등록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에 다니는 설모씨(26)는 공학도의 꿈을 접었다. 이번 학기를 마치고 공과대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었지만 포기했다. 그는 "엔지니어링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연구실 생활을 준비해왔지만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입학 준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에 재학 중인 김모씨(4학년)는 얼마 전 서초동 P학원 앞에서 밤새 줄을 섰다. 의 · 치의학전문대학원 입시 학원에 등록하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인기 강사의 강의를 들으려면 하루 전에 줄을 서야 수강권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공계 수난시대'의 한 단면이다. ◆서울대 공대의 '굴욕'

지난해 서울대 수시모집에 합격하고 등록을 포기한 인원은 총 153명.이 가운데 공대 합격생이 64명으로 전체의 42%에 달했다. 정시모집에서도 등록률 하위 5개 전공이 모두 이공계열이었다.

공대에 들어간 학생들의 이탈도 갈수록 늘어난다. 한국경제신문이 권영진 의원(한나라당)과 함께 최근 10년간(2001~2010년) 서울대 공대 제적생을 조사한 결과 자퇴 등으로 중도탈락한 학생이 1136명이었다. 17개 단과대 중 가장 많고 같은 기간 대학 전체 제적생(3687명)의 30%에 달한다. 공대는 공부가 어려운 데다 앞날도 보장되지 않아서다. 최근 공학계열 대학원 연구실에 들어간 김기수 씨(25 · 가명)는 "하루 10시간 이상 연구실에 있지만 월급이 50만원밖에 안돼 과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자연대 학생 이탈도 심각한 수준.2004년 이후 작년까지 자연대 제적률(등록생 대비 제적생)은 공대보다 매년 1%포인트가량 높았다. 윤재륜 서울대 공대 교수는 "공대 출신 엔지니어들이 사회에 나가면 의사나 경영계열 출신보다 대접을 못 받는다"며 "이공계가 엄청난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연 · 고대,한양대,KAIST도 위기연세대에 다니는 김모씨(화학과 3학년)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학원에서 의전원 입시에 필요한 강의를 듣는다. 김씨는 "수업 시작 전 2시간은 스터디모임에서 공부한다"며 "저녁에는 자습을 한 뒤 밤 11시께 학원을 나선다"고 말했다. 이공계생들의 의전원 입시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말해주는 장면이다.

연세대 물리학과는 올해 정시모집에서 20명을 합격시켰지만 5명만 등록,15명을 추가모집했다. 고려대 화학생명공학과는 모집 정원 40명 중 22명만 등록했다. 연 · 고대 이공계열 학과들의 등록률은 각각 58%,71%로 전체 평균보다 10~20%포인트씩 낮았다.

김쌍수 한국전력 사장,윤부근 삼성전자 사장 등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 테크노 최고경영자(CEO)를 배출한 한양대는 올해 공대 25명,자연대 5명 등 이공계 정원 30명을 감축했다. 대신 경영대 모집인원을 260명에서 290명으로 늘렸다. 이 대학 관계자는 "이공계 진학 희망자는 줄고 경영대 지원자는 늘어나는 추세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KAIST에선 해마다 자퇴생이 늘어난다. 2005년 49명이던 제적 · 자퇴생 수가 지난해 98명으로 100명에 육박했다. 고학년일수록 탈락 학생이 많아 진로 문제가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지난해 의 · 치전원 응시자는 9783명으로 제도 도입 첫 해(2297명)보다 5배 가까이 늘었다. 로스쿨과 신설된 6년제 약대 등도 이공계 출신을 빨아들인다.

◆갈수록 커지는 박탈감

서울대 화학생물공학 대학원에 다니는 박모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수능에서 만점 가까이 받은 그는 "나보다 좋지 않은 성적으로 다른 대학 의대에 들어갔던 친구가 대형 병원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허탈했다"고 털어놨다.

이공계 학생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신입생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서울대 자연대 화학부 3학년 최모씨는 1학년 때부터 의전원 진학 계획을 세웠다. 그는 "지난 3년간 의전원 입시를 위해 쉬지 않고 공부했다"고 말했다. 의 · 치전원의 경우 2005학년도 전체의 2%에 불과했던 22세 이하 응시자가 지난해 11.94%로 높아졌다.

대학원에 진학할 학부생이 줄어 석 · 박사급 인력 수급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석사의 경우 2000년 전체의 19.6%였던 공학계열 재학생 비중이 지난해 13.6%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공학박사 비중은 30%에서 20.8%로 10%포인트 가까이 줄었다.

◆특별취재팀=남궁 덕 과학벤처중기부장(팀장),이건호(사회부) · 손성태(과학벤처중기부) 차장,주용석 · 서기열(경제부),이정호 · 송형석(산업부),이해성 · 남윤선 · 심은지(과학벤처중기부) 기자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