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칼럼] '나 몰라?' 이숙정을 만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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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따로 없는 기득권 챙기기…배지를 완장이라 착각하게 해지금쯤 속으론 흐뭇할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사람 대다수가 '이숙정'이란 이름 석자를 알게 됐으니.이제 어디 가서 "나 몰라?"하고 소리칠 일도 없게 생겼다. 서른여섯살의 젊은 여성,그것도 민주노동당 대표를 시의원으로 뽑은 사람들의 기대는 이랬을 것이다. '젊고 여자고 학벌도 좋다. 일을 잘하는 건 물론 타협하지 않고 약자의 입장을 대변할 것이다. '
그렇게 믿었던 그가 자기를 몰라본다며 주민센터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여직원에게 서류와 가방을 집어던지는 행패를 부렸다. 당만 탈당한 채 시의원 자리는 고수하고,피해자에겐 직접 사과하는 대신 어머니를 보내 고소를 취하하게 만들었다. 지난해엔 미용실에서 지갑이 없어졌다며 난리를 친 뒤 사과 한마디 없었다는 마당이다.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는 걸로 봐 그는 지금도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며 분을 삼키고 있는지 모른다. 시 · 도 · 국회 의원과 교육감 모두 좌우에 상관없이 폼 잡고 기득권 지키는 일에 매달리고 있는 까닭이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의전과 보안을 위해 관사를 짓겠다던 계획이 반대 여론에 밀리자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마일리지를 주겠다고 나선 것도 한 예다. 시 교육청 홈페이지에 가입하면 500점,하루 한 번 로그인하면 10점,설문조사에 참여하면 100점,글 · 사진을 띄우면 최대 500점을 준다는 것이다. 1점은 1원이고 기존 회원도 신규회원처럼 500점을 준다니 60만명에게 3억원을 지급한 셈이고 비용은 갈수록 불어날 게 틀림없다.
그가 주장한 무상급식을 반대한 건 주로 일정액 이상 세금을 낸 사람들이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열심히 일해 세금을 냈으니 무상급식 혜택이라도 받아야 마땅하다며 환영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도 반대하는 건 피같은 세금이 좀더 효율적으로 쓰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내 자식 급식비는 내가 낼 테니 그 예산을 보다 효율적인 곳에 쓰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부득부득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며 교육환경 개선에 쓸 수 있는 단위 학교 예산은 그냥 두더니 이번엔 홍보에 돈을 쓰겠다는 얘기다. 참교육을 주장하는 전교조 교사들 대부분은 야간자율학습을 반대한다. 아이들을 공부 노예로 만들수 없다는 이유다. 가난한 아이들에겐 공교육이 유일한 기회다. 그런 아이들에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유혹,기회를 빼앗는다.
곽 교육감만 탓할 것도 없다. 국회에선 지난해 일단 의원 배지를 달았으면 재산이 많든 적든,심지어 금고 이상 유죄판결을 받았거나 징계에 의해 제명을 받았어도 65세부터 죽을 때까지 월 120만원 이상 주는 '대한민국 헌정회 육성법 개정안'을 재석 의원 191명 중 찬성 187명,반대 2명,기권 2명으로 통과시켰다.
민노당의 경우 뒤늦게 개정안을 다시 고치겠다고 나섰지만 그게 가능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국회의원 세비는 1억1700만원.7명의 비서 · 보좌관 급여와 통신 · 교통비 등 이것저것 합치면 1인당 연간 8억원 이상 든다고 돼 있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이번엔 가족수당과 학비보조금까지 신설했다. 서울시의회는 법적 근거 없는 시의원 보좌관 급여를 편법으로 지불하고, 경기도 의회는 아예 유급보좌관제를 도입했으니 큰 물 작은 물이 따로 없다. 보수진보,좌우 가릴 것 없이 겉으로 내세우는 이념이나 가치관에 아랑곳없이 완장이 주는 지위와 풍요를 한껏 누리려 든다. 이러니 이렇다 할 경력 없이 30대 중반에 시의원이 된 이가 여기저기서 "왜 나를 모르느냐"며 큰소리칠 수밖에.
물질적 여유를 동경하는 사람을 무조건 유치하다고 매도할 순 없다. 그러나 공인을 자처하고 입만 열면 봉사를 외치는 이들이 물질적 풍요를 삶의 목적으로 삼고,완장을 휘두르는 건 징그럽다. 이런 상태라면 기초의원과 교육감 선거는 물론 국회의원 수에 대해서도 재고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힘은 모아지기 힘들어서 그렇지 모아지면 무섭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