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리즈…'세기의 연인' 잠들다

● 엘리자베스 테일러 79세로 타계

10세 때 데뷔…오스카상 2회
'자이언트' 등 세계적 흥행작 출연
숱한 염문…결혼식만 여덟번

'세기의 여우(女優)'라는 찬사를 받았던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리즈 테일러)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시더스-시나이병원에서 23일 타계했다. 향년 79세.테일러는 심장질환의 하나인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지난달 이 병원에 입원해 6주가량 치료를 받아왔다.

그는 '버터필드8'과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두 차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인도주의적인 활동으로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사생활은 파란만장했다. 영국 배우 리처드 버튼과의 두 번의 결혼을 비롯해 7명의 남자와 여덟 차례나 결혼하는 등 결혼과 이혼을 거듭했다.


그는 1932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유한 미술상이었고 어머니는 전직 배우였다. 그의 가족은 2차 대전의 참화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동양적인 아름다움과 서양적인 미가 어우러진 외모로 10세 때 아역배우로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17세에 힐튼호텔 경영자 콘래드 힐튼과 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스타덤에 오른 작품은 1944년 개봉한 '녹원의 천사'.경마대회 우승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는 소녀를 연기했다. 이 작품이 그의 출세작이 됐지만 촬영 중 낙마로 인한 후유증은 그를 평생 힘들게 했다.
이후 당대 최고의 미남으로 꼽혔던 록 허드슨과 청춘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제임스 딘이 함께 출연한 영화 '자이언트'로 정상급 배우의 입지를 다졌다. 1963년엔 리처드 버튼과 호흡을 맞춘 '클레오파트라'로 할리우드 영화계를 뜨겁게 달궜다. 그때 여배우로서는 최초로 100만달러가 넘는 출연료를 받았다.


마흔을 넘기면서는 영화보다 잦은 스캔들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클레오파트라'에 같이 출연했던 버튼과의 사랑은 특히 각별했다. 그는 "내가 죽으면 리처드 버튼의 고향에 뿌려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화려한 인생이었지만 병마는 비켜가지 못했다. 20대 후반에는 폐렴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고 1997년에는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노년에는 에이즈 예방 홍보 대사로 활동하는 등 봉사활동에 매진했다. 팝스타 마이클 잭슨과의 돈독한 우정으로도 이목을 끌었다. 영국 여왕으로부터 '데임'작위를 받기도 했다. "너무 많은 것들이 내 인생에서 벌어졌다. " 테일러가 1989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이 말 속에 그의 인생이 함축돼 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