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1370건 '법률공화국'] 정부법안 하루에 1.3개꼴…與大野小 믿고 설익은 법안 쏟아내

절반만 국회 처리…김대중 정부 85%·盧정부땐 71% 통과
1년이상 계류법안 224건…행정부 '마이웨이'에 與도 제동
2009년 4월7일 청와대 본관.이명박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 자회사 보유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심의 · 의결했다. 경제 분야 최대 이슈였던 금산(金産) 분리 완화 문제에 정부가 최종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자 대기업의 지주사 전환작업도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2년 가까이 잠을 자고 있다. 일부 의원들이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내용"이라며 제동을 건 탓이다. 정부정책에 맞춰 지주회사로 전환한 대기업들은 이제 알짜 금융 자회사를 팔아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는 대기업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2년 내 금융사를 처분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 처분을 한 차례 유예받은 SK그룹은 7월까지 SK증권을 팔지 않으면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게 된다. SK그룹뿐 아니라 공정위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정책에 맞춰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신사업 진출을 준비했던 기업들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너무 떨어진다"며 애로를 호소한다.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담은 법안을 만들고 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발목이 잡혀 있어서다. 정쟁을 일삼는 국회 탓도 있지만 입법부와 충분한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입법 행태를 보여온 정부 책임도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MB정부는 법률공화국MB정부 3년 동안 정부법안(1370건)은 김대중 정부 3년간 (686건),노무현 정부 3년간(614건)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다. 법제처는 현 정부 들어 어려운 법률용어를 알기 쉽게 바꾸는 법률개정안 300여건이 포함된 수치라고 했다. 이를 감안해도 정부법안은 홍수처럼 증가했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정권의 성격과 방향이 바뀌면서 새로운 정책 과제가 늘어나고,금융위기 이후 사회 · 경제적으로 개혁 요구가 많아진 데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10년 만의 정권 교체인 만큼 정부가 새롭게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법안처리율은 낙제점이다. 지난 2월 말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 1370건 가운데 768건(56.1%)만 처리됐다. 602건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이 같은 처리율(3년 기준)은 김대중 정부(85.7%)와 노무현 정부(71.3%)에 비해서도 현저히 떨어진다. 정부 관계자는 "국회 처리 속도를 보면 올해부터 제출되는 정부법안은 18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정치권과 소통 못한 정부도 책임정부법안의 국회 처리율이 이처럼 낮은 것은 "18대 국회에서 여야 간 정쟁이 심화되면서 법안 처리가 뒷전으로 밀린 것(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이 주된 원인이다. 여야 간 대치로 야당에 의해 상정조차 안 된 법안이 수두룩하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정부가 사전에 치밀한 당정 협의를 하고 야당과도 충분한 소통을 했다면 최소한의 법안이 제출됐을 것"이라며 "정부가 마이웨이로 가다 보니 법안 제출은 많아지고 거부율은 높아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김 의원도 "정부가 거대 여당을 믿고 숙성되지 않는 법안을 제출한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심지어 정부법안을 놓고 여당 내에서 의견이 엇갈려 논의가 지지부진한 경우도 적지 않다. 장 교수는 "여소야대 상황이었던 김대중 · 노무현 정부 때는 정부의 법안 제출이 매우 조심스럽고 사전 물밑접촉을 충분히 거쳐야 했기 때문에 법안 제출 건수는 적었지만 통과율은 높았다"고 지적했다. ◆정부정책 신뢰성 저하

문제는 정부법안의 국회 처리 지체는 국민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점이다. 우선 정부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지난 2월 말 현재 국회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정부법안 602건 가운데 1년 이상 계류 중인 것은 224건,6개월~1년 미만은 198건,6개월 미만이 180건이다. 정부에서 새로 마련한 정책이 국회를 거쳐 실제로 시행되는 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정책에 맞춰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신사업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들로서는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 여부와 시행 시기를 종잡을 수 없어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잦다"고 말했다. 정책의 신뢰성 저하와 정책 추진의 적시성도 약화될 수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법안이 국회에서 1~2년간 잠자는 동안 시장 여건이 변해 정책효과가 반감되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