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준법지원인' 의무화] 변호사 새 일자리 적어도 1000개…기업들만 허리 '휘청'

변호사단체·법조출신 의원 '제식구 챙기기'
상위법 없이 불쑥 신설…기업경영 과잉 감시
'결국 기업들의 부담은 커지고 변호사들만 신나게 됐다. '

내년 4월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회사가 의무 도입해야 할 '준법지원인' 제도에 대한 기업들의 반응이다. 준법지원인의 역할을 제대로 규정하지 않은 채 변호사와 법대 교수들만 준법지원인을 맡을 수 있도록 함에 따라 변호사만을 위한 제도에 불과하다는 혹평이 많다. ◆이해집단 파워게임이 설익은 제도로

내부통제제도 구축에 대한 원칙을 세우지 못한 채 곧바로 각론으로 접근한 점이 근본적인 문제로 꼽힌다. 상법 회사편에 내부통제제도 관련 조항을 만들어 '기본 틀'을 제시한 뒤 개별법에서 구체적인 실현 절차를 정해야 하는데,이해다툼 끝에 불쑥 제도만 신설하려다 보니 무리수가 나왔다는 분석이다.

준법지원인 제도는 2009년 8월 의원입법으로 처음 제출될 당시부터 반대가 많았다. 변호사단체의 입법로비로 출발한 탓에 법무부가 상법 개정을 위해 운영 중인 특별위원회에서도 잘 논의되지 않는 이슈였다. 하지만 이달 초 갑작스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됐고 불과 며칠 만에 본회의까지 내리 통과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상법 개정이 다급했던 법무부가 준법지원인 도입을 매개로 국회의원들과 타협하고 변호사업계의 로비가 가세한 게 전격 통과의 배경"이라고 전했다.

◆애매한 위상과 역할

내부통제제도 관련 법률 정비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경영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기업들에 시급한 과제다. 삼성그룹의 경우 지난해 준법경영제도를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에서 시범 실시했고,올해는 전 계열사에 도입키로 했다. 다른 기업들도 감사실 법무실 등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준법감시인 제도의 도입 취지는 나쁠 게 없다. 문제는 졸속입법에 따른 위상과 역할이 애매하다는 데 있다. 준법지원인의 역할은 임직원들이 법령준수와 회사경영을 적정하게 하도록 직무수행을 감시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는 경영진과 임직원의 준법 여부 감시에 집중해야 할 준법지원인에게 '경영 전반 감시'라는 책임까지 지운 것으로 해석된다.

박성규 준법감시인협회 실장은 "개정 상법은 준법지원인을 더 상위의 개념인 '내부통제인'과 혼동하고 있다"며 "권한과 역할이 제한적인데도 '경영 전반 감시'의 책임을 떠넘긴 기형적인 내부통제시스템"이라고 우려했다. 업무가 감사의 고유 역할과 중복되는 점도 문제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는 "감사의 적법성 감사와 준법감시인의 역할이 거의 같아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감사의 임무는 '적법성 감사'와 '타당성 감사'인데,이 중 적법성 감사는 준법지원인의 역할과 별 차이 없다는 설명이다.

◆법조인으로만 자격제한 논란도준법지원인의 자격을 변호사와 법대 교수 등으로 제한한 것도 문제다. 비슷한 제도인 금융회사의 준법감시인은 금융전문가와 변호사,회계사 등을 대상으로 한다. 반면 준법지원인은 변호사와 5년 이상 법대 교수로 한정했다. 법대 교수가 준법지원인으로 가지 않을 것임을 감안하면 다분히 변호사들의 일자리를 위한 제도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준법지원인을 해야 효율적인데 변호사들만으로 자격요건을 제한해 실제 효과를 낼지 의문"이라며 "기업들의 부담만 더 늘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