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1부ㆍ(7) 대덕밸리 창업 6년간 고작 153개…'벤처 DNA'가 사라졌다

● 과학ㆍ기술 인재 10만명 키우자 - 1부ㆍ(7) 창업 황무지 대덕연구단지

실리콘밸리 100분의 1 수준
20년 전 개발한 씨감자 기술, 특허 만료된 올해 사업화라니

정부 지원 대부분 '단타성'
대박사례 안 나와 악순환…연구원들 갈수록 '몸 사리기'

"창업을 장려하는 기본 토양이 안 돼 있는데 연구소들 좀 모아놨다고 실리콘밸리가 될 수는 없죠."

최근 대전 유성구 대덕연구개발특구(대덕특구)에서 만난 한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 A연구원은 "특구가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얼마나 따라잡았는가"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A연구원은 두 번의 창업 경험이 있다. 처음엔 코스닥에 상장했을 만큼 괜찮았지만 지금은 모두 공중분해됐다고 한다. 그는 "대덕특구의 창업 시장은 사실상 죽은 상태"라며 "창업에 대한 지원도 적은 데다 창업 후에는 아예 관심이 끊겨버리는 구도에서 '한국의 실리콘밸리'는 요원하다"고 말했다. ◆'창업 황무지' 대덕특구

대덕연구단지는 1973년 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과학입국(科學立國)' 기치를 내걸고 세워졌다. 2005년'연구개발 성과의 사업화 및 창업 지원을 통해 국가과학기술을 혁신하고 경제성장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대덕특구로 이름을 바꿨다. KAIST를 비롯한 대학과 출연연 등이 이곳에 집결돼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2만개 이상의 창업기업을 길러낸 실리콘밸리나 나스닥 상장기업만 218개를 낳은 이스라엘의 하이파클러스터와는 달리 대덕특구는 '창업의 황무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신문이 대덕특구 내 주요 대학과 21개 출연연구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5년부터 이곳 출신 연구원들이 창업한 기업 수는 153개였다. 그나마 이 중 78%인 120개는 KAIST 출신이 만든 회사다. 창업 장려를 위해 특구 내에서는 대학이나 연구소가 지분의 20% 이상을 투자해 만드는 연구소기업 제도도 시행하고 있지만 6년간 고작 20개가 생겨났을 뿐이다. ◆안목 부재로 아이디어 사장(死藏)

사업화에 대한 장기적 안목 부재가 창업 열기를 살리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정흥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성과확산실장은 "20년 전 개발한 질병 없는 씨감자 기술이 특허가 다 만료된 올 들어서야 사업화될 전망"이라며 "정부가 좀 더 빨리 지원해주고 환경을 마련해 줬다면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실장은 "바이오 촉매 분야도 기술개발은 진작 완료했지만 세계 시장 규모가 50억달러에 이를 때까지 사업화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멀리 보는 지원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많다. 대덕특구에서 연구 중인 원천 · 기초기술은 꾸준한 투자를 통해 사업화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장기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구 내 연구소기업의 경우 창업 초기 2년간 최대 15억원 정도를 지원받을 수 있을 뿐 중장기적인 지원은 없다. 개인 창업은 국세,지방세 면세를 빼면 별다른 혜택이 없다. 대학에서 창업보육을 담당하는 한 연구원은 "대부분 지원자금이 창업 첫해에 '단타'로 끝나고 장기적인 지원은 없다"고 지적했다. ◆대박 사례 만들어 창업 유도해야

지원 부족만 문제가 아니다. 힘들게 창업해서 기술 상용화에 성공하면 경영 문제에 봉착한다. 한 출연연 창업지원 담당자는 "시장조사 없이 사업을 벌였다가 어디다 팔아야 할지 몰라 사업을 접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대학(원) 졸업 후 실험실에 박혀 있던 연구원들은 회계,특허 등 기본 지식도 미진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에선 창업보육센터 내에 상주하는 변호사,변리사,컨설턴트 등이 창업 초기 단계 기업을 자기 회사처럼 돕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성공 사례가 나오지 않고 창업은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창업을 준비 중인 K출연연의 B연구원은 "말만 특구지 받을 수 있는 지원은 지방공단과 다를 게 없다"며 "바이오,제약 관련 고급 기술은 시간이 걸려도 일단 상용화만 되면 장기적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만큼 그에 걸맞은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성공 사례가 나오기 시작하면 벤처캐피털 같은 민간자본이 들어오고 이들의 지원을 받는 창업자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공동기획 = 한국경제 교육과학기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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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