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 10년 걸리던 법정관리 6개월로…부채 일부 갚으면 조기종결

● 기업회생 '패스트 트랙' 도입

신용대출 500억 이상 대상 기업 가치조사ㆍ계획안 제출…기간 줄이거나 생략 가능
1년 이상 걸리던 인가, 빠르면 3개월 내 결정

쌍용자동차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2009년 1월9일이다. 이후 재산보전처분,채권조사,채권자집회 등 법에 정해진 절차를 빠짐없이 거치다 보니 그해 12월17일에야 회생계획안이 인가됐다. 신청부터 인가까지 걸린 시간은 11개월.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엇갈리며 법정관리에서 최종적으로 벗어난 것은 지난 14일이다. 회생계획안에 대한 법원의 동의에도 불구하고 법정관리를 졸업하기까지는 추가로 15개월이 더 걸렸다. 그 사이 쌍용차의 이미지는 크게 훼손됐고,영업 기반도 잠식됐다. 법원이 '패스트 트랙'이라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한 배경이다.

◆법 절차 '생략하고 줄이고'이번 통합도산법 개선안의 핵심은 △회생에 걸리는 기간을 단축시키고 △법정관리에 따른 불이익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선안은 우선 각종 절차를 생략하거나 기간을 줄였다. 회생계획안 제출,기업가치조사,1회 집회 등 종전 수개월씩 걸리던 절차를 아예 생략할 수 있게 했다. 회생계획안 제출의 경우 지금까지 회생절차 개시일부터 5개월 걸렸다. 개선안은 채권단의 회생계획안을 사전계획안으로 갈음할 수 있게 했다.

개선안은 또 현재 법에 7일 이내로 규정돼 있는 재산보전처분을 당일 가능하게 했다. 재산보전 절차를 하루라도 당겨 발빠른 채권자가 먼저 챙기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이런 모든 절차를 거친 뒤 회생계획안대로 일부라도 변제가 시작되면 회생절차를 조기 종결시킬 예정이다. 법원에 따르면 법정관리 신청에서 인가까지 소요 시간이 신성건설은 13개월10일,대우로지스틱스 13개월26일,티피씨코리아는12개월6일 각각 걸렸다. 하지만 최종 졸업까지가 문제였다. 법에 10년 동안 법원이 관리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개선안은 법정관리에 따른 각종 불이익을 줄이는 방안도 내놓았다. 현행 법에 따르면 회생기업은 워크아웃과 달리 금융회사의 신규 자금 지원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를 강제로 막을 길은 없다. 개선안은 대신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회생계획 인가 전 기업도 자금을 지원토록 하고 △배드뱅크 설립 △정책금융공사의 지원자금 활용 등을 검토키로 했다.

◆구조조정촉진법 공백 막자는 취지

법원 측이 개선안을 내놓게 된 현실적 배경도 있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2001년 워크아웃의 법적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제정됐다. 2005년까지 한시법이었다가 2007년에 다시 3년 한시법으로 개정됐다. 작년 말로 시효가 끝났지만 국회는 시한 연장을 위한 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이 때문에 당장 기업들은 워크아웃 절차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새 법이 마련될 때까지 대안은 법정관리뿐이다. 하지만 법정관리의 여러 단점이 신청에 걸림돌이 됐고,이를 해소하고자 내놓은 것이 이번 개선안이다. 파산부는 개선안이 워크아웃의 '대항마'라고 강조한다. 워크아웃에 법리적 문제가 많았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은행으로 하여금 신용공여를 의무화하고,반대채권자가 채권 매수를 청구토록 한 것은 사유재산권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워크아웃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가려져 있어 투명성도 결여돼 있다. 파산부 관계자는 "워크아웃은 금융회사 등 채권자 사이의 자율적 채무재조정 시스템이 아니라 사실상 정부의 개입으로 관치금융의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시행에 걸림돌은 없나

법원 측은 이번 개선안을 시행하는 데 걸림돌이 없다고 설명하지만 보이지 않는 장애물은 있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연장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워크아웃과 얼마나 차별화시킬 수 있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다. 신규 자금 지원이 제도적으로 가능하고 법정관리 기업이라는 낙인도 피할 수 있는 워크아웃을 선호하는 것은 사업자 입장에선 자연스러운 선택이기 때문이다. 기업회생 절차는 기본적으로 감독권의 주체가 법원이다. 채권금융회사협의회가 주체인 워크아웃에 비해 유연성이 떨어지기 쉽다. 개선안은 이를 의식,채권자 등 당사자 간 합의를 존중하겠다고 했다. 시범 운영 대상이 신용공여액 합계 500억원 이상이라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김병일/심성미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