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엉터리 교과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은 2007~2009년 외국의 사회교과서 905종을 분석해 보고 깜짝 놀랐다. 무려 477종에서 한국에 대한 오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터키는 '세계에서 조류독감이 가장 먼저 발생한 나라는 한국'이라는 터무니없는 내용을 실었고,이탈리아는 '군 출신에 의해 통치되고 있는 한국'이라고 기술했다. 심지어 '옛 포르투갈 식민지''중국어를 사용하는 나라''영양부실 국가'라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실물경제 규모 세계 13위권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는 민망할 정도다.

외국 교과서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한때 채택률 50%에 달했던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좌편향으로 문제가 됐다. '분단은 미군의 남한 점령 탓이 훨씬 더 크다''소련군은 해방군의 성격이 강하다''북한은 주체사상을 토대로 우리식 사회주의를 강조했다'….오류라기보다 의도된 편향이다. 올해 채택된 새 한국사 교과서들에도 여전히 북한을 우월한 체제로 오해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고 한다. 경제교과서의 반시장 · 반기업 내용도 마찬가지다. '시장경제에 의존하면 소득 분배의 빈부 차이는 심화된다''경제적 무질서는 한국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다''대기업 위주의 수출 증대 정책은 중소기업의 발전을 막는 요인이 되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왜곡된 경제관을 배우는 꼴이다. 시장경제와 개방,기업 성장 드라마가 한강의 기적을 낳은 원천이라는 기술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에 선정됐다'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 실렸다고 한다. 인터넷 매체가 유포한 기사를 확인 없이 인용한 모양이다. 집필 부실은 물론 검증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던 거다. 더 황당한 건 당국의 해명이다. 학생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차원에서 좋은 사례를 찾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고 변명했다고 한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찬사는 맹목적 비하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어떤 면에선 일본 후소샤의 역사교과서나 중국 동북공정 주장과 다를 게 없다. 그릇된 세계관은 이렇게 자라난다.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이상주의적 환상을 심어주는 게 아니라 현실에 토대를 둔 균형감각을 길러줘야 한다. 그래야 광우병 촛불시위,전면 무상급식,초과이익공유제 논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