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하도급 소모戰…발목 잡힌 '글로벌 현대차'

노조, 고법 판결 후 정규직 전환 요구…생산 차질
재계 "제조업도 파견근로 허용해야 글로벌 경쟁"

현대자동차 사내하도급 근로자들은 지난해 말 엑센트 등을 만드는 울산 1공장을 불법 점거해 생산 차질을 초래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부분 파업을 벌였다.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는 요구를 회사 측이 수용하지 않는다는 게 파업 이유다.

소형 상용차 포터와 승합차 스타렉스 등을 생산하는 울산 4공장도 최근 비정규직 문제로 진통을 겪었다. 사측이 작년 말 계약이 끝난 하도급 근로자들을 4공장에 재취업시키려 했지만 이번엔 정규직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이 지난달 "현대차 사내 하도급은 근로자 파견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뒤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현대차가 즉각 대법원 상고와 헌법재판소 헌법소원 제기를 결정해 법적 다툼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하도급 근로자들은 잇따라 생산라인을 세우고 있다.

◆사내하도급 문제로 곳곳에서 충돌

금속노조가 비정규직 조직화 및 정규직 전환을 올해 주요 사업으로 정하면서 자동차 조선 등 산업 현장에선 노사 간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GM이 얼마 전까지 해고자 복직을 주장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농성 때문에 곤욕을 치렀고 대우조선해양 역시 사내하도급 노동자가 송전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고용노동부가 작년 사내하도급 현황을 조사한 결과 300명 이상 사업장 근로자 132만명 중 24.6%인 32만명 정도가 하도급 계약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조선 및 철강업계에선 사내하도급 비중이 각각 61.3%와 43.7%로 나타났고 자동차 업계는 16.3%로 조사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사내하도급 활용은 단순히 노무비를 절감하기 위한 게 아니다"며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노동유연성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동유연성 확보가 절실한 현대 · 기아차는 이를 가로막는 정규직 및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반발 때문에 수출에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다. 현대차는 소형차 엑센트의 수출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기아차는 생산량이 모자라 K5의 유럽 수출을 하반기로 미뤘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파견법상 생산공정에 파견근로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직된 법제도 사내하도급을 늘리는 요인과 관련이 있다"고 꼬집었다.

◆자동차 · 조선업계 "문제는 고용유연성"

현대차가 사내하도급을 도입한 것은 1998년 외환위기 직후다. 당시 월 판매실적이 급감하자,노사는 정리해고 277명을 포함해 1만여명에 대한 고용조정을 실시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후 정규직 노조는 고용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전환배치 및 기피공정 투입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사측은 생산차질을 파하기 위해 사내하도급을 확대했고,정규직 노조는 묵인했다. 관계자는 "고용보장을 받으려는 정규직 노조와 노동 경직성을 피하려는 사측 간 타협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사내하도급 제도가 노동시장의 경직성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유연성을 확대하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재계에선 파견근로 허용 업종을 제조업으로 확대하고 파견기간 제한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과 영국에선 파견대상 업무와 기간에 제한이 없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