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재벌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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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치워." MBC 수목드라마 '로열 패밀리'에서 JK그룹 회장이 내뱉은 말이다. '저거'는 물건이 아니라 며느리다. 장남인 남편을 제치고 그룹지주사 사장 자리를 꿰찬 손아래 동서에게 독설을 내뿜다 쓰러진 큰며느리를 두고 시어머니가 아랫사람들에게 던진 얘기다.
TV에 재벌 드라마가 넘친다. MBC 주말드라마 '욕망의 불꽃', SBS 월화드라마 '마이더스', MBC 수목드라마 '로열 패밀리'에 이르기까지 온통 재벌 판이다. 오락프로그램에선 규모와 등장인물의 재산 등을 따져 재계 순위도 매겼다. '마이더스'의 인진그룹은 40위,'로열 패밀리'의 JK그룹은 10위권이란 식이다. 백마 탄 왕자의 신데렐라 구하기에 치중돼 있던 드라마가 재벌가의 문어발식 재산 증식과 후계자 선정을 둘러싼 집안 싸움 쪽으로 방향을 튼 셈이다. 드라마에는 기업 M&A,탈세,정치권과의 유착부터 자식들 혹은 동서끼리는 물론 부모 자식 간의 암투까지 상상할 수 있는,아니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
몇 가지 패턴도 보인다. 장남은 찌질하다. 가족간 분쟁도 아들과 아들이 아닌 아들과 딸,며느리와 며느리가 벌이는 식으로 여성이 전면에 등장한다. 신데렐라가 아닌 여왕벌들의 부상이다. '욕망의 불꽃'에서 불꽃을 태우는 건 3남의 부인이고,'마이더스' 속 후계자 전쟁의 주역은 차남과 배다른 여동생이다. '로열패밀리'에서도 큰아들은 물러나고 두 며느리와 딸이 경합한다. '로열 패밀리'에선 그룹 총수가 여성이다. 부의 과시 또한 외제차나 명품 가방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현찰 다발이다. 고문변호사 스카우트 비용으로 1억원의 현찰이 나뒹군다.
재벌드라마를 만드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화려한 삶을 동경하면서 인생역전을 꿈꾸는 이들의 욕망을 반영한다'는 측면도 있을 테고 '재벌가의 암투와 비정함을 통해 평범한 삶의 행복을 깨우치게 하자'는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취미로 헬기를 타고,하루 입원비만 400만원인 병동에 쉬러 다닌다는 식의 전개는 아무래도 비현실적이다. 이들 드라마에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새상품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막장일 뿐이다. '문화산업은 고객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미명 아래 고객의 반응을 날조한다'고 말한 사람은 아도르노다. 날조와 현실은 너무도 거리가 멀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TV에 재벌 드라마가 넘친다. MBC 주말드라마 '욕망의 불꽃', SBS 월화드라마 '마이더스', MBC 수목드라마 '로열 패밀리'에 이르기까지 온통 재벌 판이다. 오락프로그램에선 규모와 등장인물의 재산 등을 따져 재계 순위도 매겼다. '마이더스'의 인진그룹은 40위,'로열 패밀리'의 JK그룹은 10위권이란 식이다. 백마 탄 왕자의 신데렐라 구하기에 치중돼 있던 드라마가 재벌가의 문어발식 재산 증식과 후계자 선정을 둘러싼 집안 싸움 쪽으로 방향을 튼 셈이다. 드라마에는 기업 M&A,탈세,정치권과의 유착부터 자식들 혹은 동서끼리는 물론 부모 자식 간의 암투까지 상상할 수 있는,아니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
몇 가지 패턴도 보인다. 장남은 찌질하다. 가족간 분쟁도 아들과 아들이 아닌 아들과 딸,며느리와 며느리가 벌이는 식으로 여성이 전면에 등장한다. 신데렐라가 아닌 여왕벌들의 부상이다. '욕망의 불꽃'에서 불꽃을 태우는 건 3남의 부인이고,'마이더스' 속 후계자 전쟁의 주역은 차남과 배다른 여동생이다. '로열패밀리'에서도 큰아들은 물러나고 두 며느리와 딸이 경합한다. '로열 패밀리'에선 그룹 총수가 여성이다. 부의 과시 또한 외제차나 명품 가방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현찰 다발이다. 고문변호사 스카우트 비용으로 1억원의 현찰이 나뒹군다.
재벌드라마를 만드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화려한 삶을 동경하면서 인생역전을 꿈꾸는 이들의 욕망을 반영한다'는 측면도 있을 테고 '재벌가의 암투와 비정함을 통해 평범한 삶의 행복을 깨우치게 하자'는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취미로 헬기를 타고,하루 입원비만 400만원인 병동에 쉬러 다닌다는 식의 전개는 아무래도 비현실적이다. 이들 드라마에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새상품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막장일 뿐이다. '문화산업은 고객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미명 아래 고객의 반응을 날조한다'고 말한 사람은 아도르노다. 날조와 현실은 너무도 거리가 멀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