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1부·(8) 스펙은 빵빵한데 못 믿을 전공지식 "쓸 만한 인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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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기술 인재 10만명 키우자…1부·(8) 이공계 인력 수급 불균형#1.현대자동차그룹 계열 부품 업체인 현대파워텍은 지난 해 연구 · 개발(R&D) 인력을 세 차례에 걸쳐 선발했다. 면접에 응한 이공계 출신 대졸자 및 석 · 박사들의 수준이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다. 학점 영어실력 등 이른바 '스펙'이 뛰어난 지원자들이 몰렸지만 면접을 진행하면 기본적인 전공 관련 질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 관계자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은 응시자들을 제외하니 예정된 선발 인원의 절반도 채 안됐다"며 "세 차례 채용을 실시해 겨우 인원을 채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명문대 석·박사 채용해도 이직 생각만…처음부터 재교육하는 경우도 '수두록'
해외인력 채용해도 지방 근무는 'NO'
이공계 지원·수도권 R&D단지 늘려야
#2.LS산전은 최근 신사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는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관련 연구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주요 대학에서 배출되는 전기 분야 석 · 박사는 매년 20명 안팎.각 기업들이 이들을 놓고 영입 전쟁을 치르는 상황이다. 전기 분야는 해당 학과가 학부제로 전환되면서 전기 · 전자 · 컴퓨터로 분류됐고,학생들이 인기 분야인 전자와 컴퓨터 분야로 몰리면서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다. LS산전은 아예 해외에서 우수 인재를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내 산업계에 이공계 인재 수급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R&D 투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R&D를 담당할 우수 이공계 연구 인력을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업계에선 "국내 명문대 출신 석 · 박사 출신을 데려와도 이직만 생각하지 별 쓸모가 없다"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기업들이 앞다퉈 진출하고 있는 그린(green) 산업과 바이오 산업 등 신사업 분야에선 이런 고급 인력난은 더욱 심각하다. 해외 현지 채용 등을 통해 애써 우수 인재를 뽑으면 공장과 연구소가 있는 지방 근무를 꺼리며 이직하는 경우가 많아 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연구 인력 찾아 해외로
대기업 계열 석유화학회사인 A사의 사장과 기술연구소장은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다. 신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바이오 산업 분야의 고급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서다. 다음 달 초까지 2주에 걸쳐 뉴욕,보스턴,시카고,샌프란시스코 등 4개 도시를 돌며 현지 채용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작년 초부터 바이오 산업을 준비해왔지만 국내에서 연구 인력을 구하지 못해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태에 빠져있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에서 바이오 분야의 우수한 석 · 박사 출신들을 확보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며 "해외에서 인력을 뽑아도 졸업까지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려 당장 급한 불을 끄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디스플레이용 부품을 만드는 대기업 A사도 지난 해 60명의 고급 R&D인력을 채용할 계획이었으나 절반도 채 채우지 못했다. 지원서는 선발인원의 3배 가까이 몰렸지만 뽑을 사람은 많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이공계 대졸 직원을 뽑아도 현장에서 1년 이상 재교육을 시켜야할 정도로 대학 교육과 산업 현장과의 괴리가 크다"고 전했다.
◆수원벨트가 고급 인재 유치 기준
대부분의 기업 R&D 센터가 지방에 있다는 점도 고급 인력 확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R&D 인력 대부분이 연봉이나 장래성보다는 자녀들의 교육과 문화접근성 등을 따진다는 게 기업들의 설명이다. 수원 이남에 R&D 센터가 있으면 우수 인재 유치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인 '수원 벨트'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공대를 졸업한 많은 학생들이 지방 근무 대신 서울 본사의 기획 · 마케팅 부서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하길 선호한다"며 "국내 명문대나 해외 대학 이공계 출신들을 어렵게 뽑아 울산 공장에 보내면 6개월이나 1년 사이에 서울에 있는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과천을 대규모 R&D 단지로"
기업들의 R&D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선 초 · 중 · 고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이공계 대학원생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김용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은 "어려서부터 과학 분야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이공계 대학원생에 대한 장학금 및 병역혜택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수도권 주변의 여유부지를 대규모 R&D센터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재계 관계자는 "그린벨트를 대폭 완화하거나 2012년 이전 예정인 과천정부청사를 R&D단지로 활용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호/송형석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