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C 인간으로 바꾼 '박근형표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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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어,새우젓장사 아닌가. 맞다면,아니 만약 아니라면…. 어,어,그만큼…. 정직하길 바라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서울시극단 연습실.고전 중의 고전 '햄릿'을 연습 중인 배우들의 대사가 영 서툴다. 고민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햄릿은 한손에 야구공,다른 손엔 글러브를 끼고 있다.
햄릿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이 극의 연출자는 대학로 간판스타인 박근형 씨(48 · 사진)다. 그는 서울시극단(단장 김철리)과 오는 8일부터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무대에 올리는 이 작품을 통해 '21세기 햄릿'을 만들기로 작심했다. 1999년 '청춘 예찬'을 비롯해 '너무 놀라지 마라' '경숙이,경숙이 아버지' '대대손손' 등으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입증한 그는 "햄릿형 인간이 있는 게 아니라 인간 모두가 다 햄릿"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그렇죠.마음은 있으나 행동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극 중에서 누굴 죽여야할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원작의 깊이와 장황함을 요즘 관객에 맞게 다듬고 복잡한 요소는 걷어낼 겁니다. 햄릿이란 인물에 집중하려고요. "
박씨는 원작의 단락들을 모두 뒤바꿨다고 했다. 극적인 장면보다 인물의 감정 흐름을 앞세웠다는 것.앞 부분에 있던 독백 '사느냐 죽느냐'는 말미에 배치했다. 공연 2주 전인데 배우들이 대사를 다 외우지 못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고전 번역극은 남의 나라 이야기이지만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죠.대신 어렵지 않게,단순하게 만들려고 해요. 의상도 현대극처럼 하고 무대도 광장으로 옮겼어요. "그의 연극에는 일상적인 이야기와 가족 간의 애증이 담겨 있다. 극의 중간에는 웃음이 숨어 있고 어느 순간 폭발하는 감정선도 들어 있다. 배우들은 꾸밈없이 연기한다. 박찬욱 봉준호 등 유명 영화 감독들이 공연 때마다 찾아와 배우들을 관찰한다.
"많이 놀아요. 배우들과 노는 시간을 가지며 관심을 기울이죠.그들의 생각과 삶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면 그걸 작품에 반영하고,그러다 보니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
정해진 연출 기법은 따로 없다고 한다. "제 작품이 조금 다르다면 그건 정규교육과 문학수업을 받지 않고 현장에서 지냈기 때문일 거예요. 개막을 1주일 앞두고 아직도 결말을 구상 중인 연출이 또 있을까요. "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