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남북관계 돌파구, 기업 역할 크다

北, 잇단 도발에 사과 한마디 없어
경협 활성화로 상생토대 마련하길
남북한이 오랜만에 타협의 결실을 보았다. 지난달 5일 서해상에서 표류해 남한으로 내려온 북한 주민 27명이 50일 만에 북한으로 송환됐다. 원래 내려왔던 31명 중 4명의 귀순 여부를 놓고 심한 입장 차이를 보였던 남북한이 협상을 통해 난제를 순조롭게 마무리지은 것이다. 그저께 열린 남북간 백두산 화산회의에서도 큰 성과는 없었지만 지난 2월 초 남북군사실무회담이 결렬된 이후 처음으로 남북이 마주앉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근 수년 동안 남북 관계는 단절과 군사적 긴장이 증폭돼 왔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한다는 이전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대북 압박 정책은 균형있는 남북 관계 형성에 도움을 주리라 본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다툼과 분쟁의 지속은 정책에 대한 피로감과 불안감을 조성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는 점이다. 남북간 경색을 풀기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 등 민간 차원의 교류 활성화도 활용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더욱이 요즈음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대변란으로 정치적 이념 등에서 비롯된 대립과 갈등이 결국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지 걱정스러운 양상이다. 중동 각국에서 벌어지는 내전이나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수만명의 인명 피해,남북한 대치로 인한 젊은 생명들의 산화는 국가든 개인이든 생명을 지키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운다. 또한 남북한 문제는 양자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등 주변국과 정치경제적으로 얽혀 있어 남북한 당사자들이 먼저 문제 해결의 단초를 찾지 못하면 그 누구도 해결하기 힘들게 된다.

한반도에 다시금 화해와 공존의 물결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그래도 베풀 여유가 있는 남한 주도로 인도적이며 정서적 측면에서부터 남북한 사이에 믿음을 쌓아가야 한다. 물론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건과 같은 잇단 북한의 도발에 대해 분명한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전제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 차원의 경색된 남북관계를 대신할 민간 차원의 돌파구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우선 북한의 영유아 등 취약 계층에 대한 분유,의약품과 같은 긴급구호지원은 하루속히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이 끼니를 잇기 어려운 최빈국이었을 때 미국의 막대한 구호 물자 지원은 미국을 형제 국가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북한 제의로 이뤄지는 백두산 화산회의를 '한반도 재난대책 회의'로 발전시키는 일도 양측 신뢰를 키우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한반도 전체를 대재앙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각종 위험성을 서로 지혜를 모아 진단하고 예방책을 마련하는 작업은 동족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남북의 상생 공존을 위해 무엇보다 하루속히 복원돼야 할 과제 중 또 다른 하나가 남북 경제협력이다. 남북 경협은 철옹성과 같았던 한반도의 38선 장벽을 허무는 역할을 했다. 군사적 요충지인 개성과 금강산 지역의 철책이 사라진 것은 세계를 놀라게 한 역사적 사건이다. 경제 협력 증진은 남북간 상호 의존도뿐만 아니라 평화공존의 필요성도 높여준다. 더 나아가 양측 주민들의 교류 증진으로 서로의 문화와 제도를 이해하고 개선하려는 욕구를 증진시킨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개성공단은 북한 경제 개혁의 교두보 역할을 하며,북한 주민들을 시장지향적 사업과 인센티브에 접하게 하는 사업"으로 격찬했다. 이는 길게 보면 결국 통일 비용을 최소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동서 냉전 시대가 와해되는 역사적 과정을 보아도 이념과 체제를 넘어 교류의 물꼬를 트고 평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민간 기업의 몫이었다. 정부가 나서기 어려우면 기업이라도 경제 교류를 추진할 수 있도록 닫혀진 남북간 통로를 이제는 조금씩 열어주어야 한다.

유병규 < 현대경제硏 경제연구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