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직도 500만원씩 싸들고 오는 업자 수두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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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수도권 市長의 '뇌물 관행' 고백"시장을 해보니 돈 안 받고 버티기 정말 어려운 자리더라.'해 먹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티도 안 난다. 너무나 유혹이 많다. "
해 먹겠다고 마음 먹으면 유혹에 빠지기 쉬운 구조
의회까지 한통속이면 감시 소홀로 비리 더 수월…시장실 CCTV 설치해 거절
최근 만난 수도권 A시장이 전한 지방자치단체의 뇌물 관행은 충격적이었다. 지난해 6 · 2 지방선거에서 시장에 당선된 A시장에게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뻗쳐 온 뇌물의 유혹은 일상이었다. "취임 후 인사오겠다는 관내 사업자들을 만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욕먹지 않기 위해선 인사 정도는 받아줘야 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인사한다면서 책이나 선물을 건네주면 예외 없이 5만원짜리가 빽빽이 담긴 봉투가 들어 있었다. 최소 500만원이다. "
취임 후 지난 8개월 동안 A시장이 사흘이 멀다 하고 겪은 일이다. A시장은 "시장 사인 하나면 수억,수십억원짜리 사업이 왔다갔다 한다. 공개입찰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눈에 안 띄게 한 업체를 밀어줄 수도 있다. 외형적으로는 특정 업체와 시장의 유착관계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평소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 정도까지 용돈으로 찔러주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A시장은 '이렇게 가다간 나도 유혹의 수렁에 빠지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A시장이 내린 특단의 카드는 시장실 CCTV 설치였다. 그는 "찾아온 업자들이 봉투를 내밀거나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빨간불이 반짝거리는 CCTV를 가리킨다. 그러면 움찔하고 거둬들이더라"고 전했다. A시장은 지자체에 뇌물이 만연한 원인으로 중앙 정부에 비해 느슨한 감시시스템을 꼽았다. "같은 당 단체장에 의회까지 한통속이면 일단 뇌물수수나 비리가 수월하다. 여기에 언론과 시민단체까지 우호적인 관계를 이유로 감시를 소홀히 하면 역설적으로 임기를 채우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A시장의 고백은 5기째를 맞고 있는 민선 지자체의 비리 먹이사슬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최근엔 건설사에 특혜를 주고 별장을 뇌물로 받는 단체장까지 등장하는 등 뇌물수수 방식도 지능화,다양화되고 있다. 실제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4기(2006~2010년) 지자체장 240명 가운데 절반에 육박한 113명이 선거법 위반이나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이 가운데 94명이 비리와 뇌물수수 혐의다. 서울시에서만 구청장과 시의원의 40%가 뇌물비리와 선거법 위반으로 직위를 상실했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차치하고 '임기 마치는 기초단체장을 보고 싶다'는 게 유권자들의 바람이 될 정도다. 지난 4기 지자체 재 · 보궐 선거비용만 186억원에 달했다. 재임 중 비리혐의로 재선거가 치러진 경우 최소한 선거비용이라도 원인 제공자에게 청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현행 선거법에서는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이 확정된 경우에 한해 선거 기탁금을 국가에 반환토록 할 뿐 재직 중 비리혐의로 인한 비용청구 기준은 없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법 외에 뇌물 수수 비리 등으로 인한 재선거 비용과 관련해서는 별도의 법 개정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