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60% "원자재값 상승폭 납품가 반영 못해"
입력
수정
중기중앙회, 400곳 조사…납품가 7%만 올라가방과 벨트 등을 만들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중견기업 B사에 납품하는 A사는 올해 들어 2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이달도 적자가 불가피하다. 구제역 파동과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겹치면서 가죽 가격이 30%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B사가 납품가격을 상향 조정해줬지만 재료값 오름세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B사는 "안타깝지만 현재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자신도 대형 할인점에 납품하는데 이 할인점이 가격 상승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력 약화 우려·납품처 거부 때문"
A사처럼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판매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중소기업들이 9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을 인상했다가 그나마 유지되던 판매가 줄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여기에 납품업체들의 가격 인상 거부와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 400곳을 대상으로 최근 1년간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른 경영실태를 조사한 결과 원자재 가격은 평균 23.9% 치솟았지만 납품(판매)가격은 7.2% 오른 데 그쳤다고 30일 발표했다. 중소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인상분의 대부분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개별 업체별로는 조사대상 기업의 92.3%가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고 답했고 변동이 없다는 업체는 7.8%에 불과했다. 반면 납품가격 변동을 묻는 질문에는 34.5%만이 올렸다고 답했다. 61.3%는 납품가격이 변동되지 않았고 4.3%는 오히려 가격을 낮췄다. 납품가격을 올렸다고 답한 업체 중에서도 71.6%는 '원자재 상승분의 일부만 반영됐다'고 전했다. 결국 제대로 원자재 가격 변동분을 반영한 업체는 10.6%에 그쳤다.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이유는 '가격 경쟁력 약화 우려 때문'이라는 답이 51.1%로 절반을 넘었고 납품처의 가격 인상 거부(42.9%),정부의 물가안정책에 대한 부담(3.9%) 등이 뒤를 이었다.
업종별로 원자재 가격 상승폭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섬유 · 가죽으로 35.9%였다. 국제원유가격 상승세와 사료값 상승,구제역 파동이 겹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식료품 가격은 27.3% 올랐고 목재 · 종이 · 펄프(24.3%),석유 · 화학(23.7%),비철금속(20.2%) 등도 20% 이상 올랐다. 분야별로 수출기업보다는 내수기업이 원자재 가격 상승폭이 컸다. 납품가에 반영하는 폭은 반대로 수출기업이 높았다.
결국 수출기업이 원자재 가격 변동에 덜 민감하고 대응력은 빨랐다는 얘기다. 또 대기업에 납품하는 업체들이 중소기업에 납품하는 업체들보다 상대적으로 원자재 가격 오름폭을 더 많이 납품가격에 반영할 수 있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