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그럼에도 原電이다

방사능 공포 왜곡된 진실서 비롯
원전없는 에너지 대안은 불가능
미국 원자력 산업의 30년 암흑기를 가져온 것은 1979년 발생한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TMI) 원전 사고였다. 그 해 3월28일 TMI 2호기는 원전 상용화 이래 가장 나쁜 사태로 전개됐다. 원자로 내의 냉각수가 빠져 나가면서 핵연료가 녹는 노심용융이 일어나고 방사성 물질 일부가 바깥으로 유출됐다.

사고 나흘 뒤 현장을 방문한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은 "더 이상 원전을 건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원전에 대한 끝없는 불신,방사능에 대한 극도의 공포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사고를 예견한 듯 그 직전 미국에서 개봉된,명배우 제인 폰다가 열연한 '차이나 신드롬'이란 영화가 분위기를 더 나쁘게 몰아갔다. 영화는 TMI가 있던 펜실베이니아 원전의 노심이 녹아 지각의 갈라진 틈을 통해 지구 중심까지 뚫고 내려가 반대쪽 중국에까지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TMI 사고가 원전산업에 가져온 파장은 엄청났지만,드러난 진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선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었다. 미 정부의 조사 결과는 주민 몇 사람의 피폭량(被曝量)이 가슴 X선 사진을 네 번 촬영하는 정도에 그쳤다는 것이었다. 당시 원전 반경 8㎞ 이내에 살던 3만여명에 대한 역학 연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때 방출된 방사성 물질로 암 발병이 늘었다거나 환경을 오염시킨 증거는 없다는 게 지금까지의 결론이다.

하지만 1986년 발생한 최악의 체르노빌 사고는 원전 산업에 결정타를 날린다. 이후 프랑스와 일본,그리고 한국 정도가 계속 원전을 건설했을 뿐이다. 우리가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를 통해 세계 다섯 번째 원전 수출국으로 올라선 것도 이 암흑기에 꾸준히 원전 건설과 가동 안전성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을 축적해온 덕분이다.

이번 일본 후쿠시마 사고는 또다시 원자력 르네상스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게 틀림없다. TMI보다 심각성이 더한 탓이다. 당장 독일은 노후된 원전 7기의 가동을 중단시키고 원전정책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풍력 등 신 ·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독일이 이번 사태를 빌미로 대체에너지 시장을 주도하려는 계산법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문제는 전력 생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당장 시급한 이 때 원전의 대안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지난 30년 각국이 원전을 절실히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은 석유가격이 장기간 안정됐기 때문이다. 유가는 1979년 2차 오일쇼크 때 배럴당 20달러를 돌파한 뒤 2004년에 와서야 30달러 선을 넘어섰다. 하지만 기름값은 이제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고,화석연료 고갈 우려가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예전처럼 싸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앞으로 전력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예를 들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전기자동차의 보급 확대를 말하면서도 막대한 전력 수요를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논의는 없다. 화석연료는 한계에 도달했고,태양광이나 풍력 · 지열 등 신 · 재생에너지 대안론은 아직 현실성이 없다. 원전의 전력생산 비용은 석유의 6분의 1,석탄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원전의 우라늄 연료 1g의 핵분열 에너지는 석유 9드럼,또는 석탄 3t이 탈 때 내는 에너지와 맞먹는 수준이다.

후쿠시마 사고는 확실히 상정되는 범위를 넘어선 원전 재앙이다. 하지만 방사성 물질 확산에 따른 인체 피해와 환경 오염은 모두 예단(豫斷)일 뿐이다. 그 영향은 오랜 기간 철저한 추적조사를 통해 검증될 것이다. 지레 방사능 공포에 빠져드는 것은 과학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나쁜 것은 과학의 영역인 원전의 안전성을 정치 ·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 진실을 왜곡하는 행태다. 방사능만 하더라도 석탄화력발전소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속의 방사성 물질이 원전보다 훨씬 많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