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나는 깡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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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외국어를 붙잡고 씨름하거나 외국인과 대화를 하다가 머리가 지끈거려 본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벌을 내리기 위해 서로 다른 언어를 쓰게 했다는 바벨탑 전설도 있지만 어쨌든 번역과 통역은 이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늘 번잡스럽고 골치아픈 일이다.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 체육관 등의 벽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글이다.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우스가 한 말이라는데 번역 과정에서 오역이 이뤄진 대표적 사례다. 유베날리우스가 살던 시절에는 검투사들이 한창 인기를 끌었고 그래서 요즘처럼 '몸짱 열풍'이 불었던 모양이다. 이런 세태를 꼬집어 그는 "근육만 키우는 멍청이들이 머릿속까지 채우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빈정댄 것이라고 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역시 잘못된 번역이 낳은 결과다. 신데렐라의 원작은 샤를 페로라고 하는 프랑스 작가가 썼는데 이 동화가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프랑스어로 '털가죽(vair)' 슬리퍼가 발음이 유사한 '유리(verre)'로 둔갑하면서 아예 유리구두로 돼버렸는 얘기다. 성경에조차 오역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성경 구절도 히브리어 밧줄(gamta)을 낙타(gamla)로 오역한 결과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애교로 봐줄 수 있다.
번역 오류로 한 차례 수정돼 국회에 제출된 한 · EU FTA 비준안에서 또 다시 오류가 발견됐다고 한다. 그것도 단순한 오역이 아니라 일부 조항은 빠져버리고 어떤 부분은 정반대로 번역된 것까지 있단다. 무려 160군데가 잘못 번역됐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외부에 맡기면 2억원 넘게 들어 돈을 아끼려고 외교통상부 직원들이 직접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게 정부의 대답이다. 무슨 가내수공업으로 물건 만들 듯이 번역하려했다는 얘기 앞에서는 그저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다.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정부에 이렇게 얘기할지도 모른다. How do you do?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니?) See you again (어디 두고 보자). 예상되는 정부의 답변은 이렇다. Yes I can (그래 나는 깡통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 체육관 등의 벽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글이다.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우스가 한 말이라는데 번역 과정에서 오역이 이뤄진 대표적 사례다. 유베날리우스가 살던 시절에는 검투사들이 한창 인기를 끌었고 그래서 요즘처럼 '몸짱 열풍'이 불었던 모양이다. 이런 세태를 꼬집어 그는 "근육만 키우는 멍청이들이 머릿속까지 채우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빈정댄 것이라고 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역시 잘못된 번역이 낳은 결과다. 신데렐라의 원작은 샤를 페로라고 하는 프랑스 작가가 썼는데 이 동화가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프랑스어로 '털가죽(vair)' 슬리퍼가 발음이 유사한 '유리(verre)'로 둔갑하면서 아예 유리구두로 돼버렸는 얘기다. 성경에조차 오역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성경 구절도 히브리어 밧줄(gamta)을 낙타(gamla)로 오역한 결과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애교로 봐줄 수 있다.
번역 오류로 한 차례 수정돼 국회에 제출된 한 · EU FTA 비준안에서 또 다시 오류가 발견됐다고 한다. 그것도 단순한 오역이 아니라 일부 조항은 빠져버리고 어떤 부분은 정반대로 번역된 것까지 있단다. 무려 160군데가 잘못 번역됐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외부에 맡기면 2억원 넘게 들어 돈을 아끼려고 외교통상부 직원들이 직접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게 정부의 대답이다. 무슨 가내수공업으로 물건 만들 듯이 번역하려했다는 얘기 앞에서는 그저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다.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정부에 이렇게 얘기할지도 모른다. How do you do?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니?) See you again (어디 두고 보자). 예상되는 정부의 답변은 이렇다. Yes I can (그래 나는 깡통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