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뒤통수 맞은 '조용한 독도 외교'

"또 그 '시즌'이 돌아왔네요. 연례 행사 아니겠어요. 이러다 말겠죠."

일본 문부과학성이 30일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하자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혀를 찼다.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표기)는 일본 땅"이라는 기술 및 표기를 한 일본의 교과서 숫자는 예전보다 더욱 늘었고,표현 강도도 세졌다. 일본의 독도 교과서 파동은 연례 행사처럼 됐다. 한국 정부와 일본의 대응 패턴은 독도 문제가 본격 불거진 10여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검정 때가 다가오면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에 협조 요청을 한다. 그럼에도 일본 문부성은 멋대로 바꾼 교과서 검정 결과를 내놓는다. 우리는 급히 외교통상부 대변인의 성명을 발표하고,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항의한다. 주일대사가 외무성을 방문해 항의서를 전달한다. 올해도 그랬다. 정치권은 일본을 성토하는 발언을 쏟아낸다. 이런 식으로 한동안 시끄럽다가 곧 흐지부지될 것이다.

정부 논리는 한결같다. "우리가 과도한 조치를 취하면 일본의 맞대응을 초래해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는 게 외교부의 논리다. 독도가 국제분쟁지역이라는 인식이 국제사회에 확산되면 한국에 득 될 게 없다는 것이다. 한 당국자는 "차분하고 단호하며 장기적인 대응을 유지할 것"이라며 "큰 틀은 국격있는 외교와 미래지향적 한 · 일 관계"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변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 악순환은 내년에도 또 되풀이될 게 뻔하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의 대응은 참고가 될 만하다. 쿠릴열도 문제로 일본과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는 우리처럼 '점잖지' 않다. 대신 행동으로 보여준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항의를 묵살하고 쿠릴열도를 방문했다. '우리 땅'이라는 걸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독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실질적 행동으로 영유권이 불가침임을 보여주는 게 효과적"이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올해 교과서 파동은 얼마 전 일본 대지진에 대한 우리의 인도적 지원이 활발한 가운데 불거졌다. 그래서 더 쓰리다. 국민 여론이 더 들끓는 이유다. '조용한 외교'로 번번이 일본에 뒤통수를 맞고 있는 정부가 '국격 있는 외교'를 논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김정은 정치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