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교원평가제가 친서민 정책이다
입력
수정
무능교사 퇴출돼야 공교육 살아…국회ㆍ교육계 외면 이해 못할 일"교사들의 철밥통을 깨야 서민 자녀가 산다. " 극우 보수주의자의 주장이 아니다. 진보 성향의 다큐멘터리 감독 데이비스 구겐하임의 최신작인 '슈퍼맨을 기다리며'가 던진 메시지다. 아카데미상 수상작 '불편한 진실'의 감독으로도 널리 알려진 구겐하임의 주장은 미국 정계에서 급속도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시각이기도 하다. 교원 평가를 통해 무능한 교사를 추방하고 우수한 교사를 우대하는 것이야말로 친서민 정책이라는 견해는 다수의 여야 정치인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은 재정 건전성 확보와 아울러 교사평가 제도 도입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삼고 있다. C L 오터 아이다호 주지사,릭 스캇 플로리다 주지사,그리고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 등은 서민층 자녀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계속 제공하기 위해 교원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전임 주지사들의 무분별한 예산 운영으로 인해 주정부 재정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초 · 중등 교육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능한 교사들에게까지 정년을 보장해 줄 수 없다고 한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제도 도입에 열성적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낙오자 없는 교육'을 표방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노 차일드 레프트 비하인드(No child left behind)' 정책을 수정 발전시킨 '레이스 투 더 톱(Race to the top)' 정책을 통해 교원 평가제 논의의 불을 지폈다.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로스앤젤레스 시장과 코리 부커 뉴어크 시장 등은 평가제를 통해 정년 보장제와 연공서열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계층 간의 소득 격차를 줄이는 데는 공교육 정상화가 필수적이고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는 양질의 교원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최신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제시한다.
우리는 어떤가? 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교원평가제는 대다수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사가 2010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학부모 가운데 86.4%가 이 제도 시행에 찬성하고 79.3%는 평가 결과를 인사에 반영해야 한다고 답했다.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가 일반 국민 5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서도 유사한 결과를 보여준다. 응답자의 76.3%가 제도를 지지하고 64.7%는 평가 결과를 승진 심사 등에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원평가제 시행은 심각한 장애물들에 직면해 있다. 민주당은 제도 도입에 어깃장을 놓았다. 2009년 교과부 장관의 3불정책(본고사 · 고교등급제 · 기여입학제 금지) 관련 발언을 문제삼아 제도 도입을 위한 교육법 개정안에 참여하기로 했던 당론을 뒤집었다. 한나라당의 행태도 한심하기만 하다. 같은 해 단독으로 법안소위를 연 여당의원들은 평가 제도를 무력화시켰다. 평가 결과를 교원 인사,보수에 연계하지 않기로 했다. 그뿐이 아니다. 3월 초 서울시 교육감을 비롯한 6개 시도의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은 제도 시행 자체를 자율화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실질적으로 유명무실화하겠다는 의도다.
웃지 못할 일이다. 경쟁이라도 하듯 자칭 친서민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정치권과 교육계가 대표적인 친서민 정책 도입을 도외시하고 있다. 유학을 보내거나 사교육비를 지출하기 힘든 대다수 국민에게 절실한 공교육 혁신을 위한 지름길을 외면하고 있다. 대신 학급인원 축소와 학습시간 단축 등 각종 연구를 통해 효과가 희박한 것으로 판명된 정책들을 만병통치약인 양 내세우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여야 정치인들과 교육 관계자들이 구겐하임의 경고를 경청하기를 바란다. 강도 높은 교원평가제도를 통해 공교육을 다시 세울 수 있기를 고대한다.
윤계섭 < 서울대 경영학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