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출수 줄줄 새는데…간판 내린 구제역 본부

매몰지 오염 우려 확산에도
정부 "문제 없다"만 되풀이
늑장대응에 가축 348만마리 살처분
정부가 사실상 구제역 종식을 선언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31일 "구제역 매몰지 정비보완 공사가 차질 없이 완료돼 활동을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동안 구제역 대책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던 중대본은 93일간의 활동을 마쳤다.

이번 사태는 정부의 안이한 초기 대응 때문에 확산됐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문제될 게 없었다는 입장이다. 매몰지 침출수에 의한 2차 오염도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수 오염 논란은 더욱 확산되는 추세다.

◆피해 규모 3조원에 달해

이번 구제역 사태는 지난해 11월28일 경북 안동에서 최초 발생한 뒤 전국 각지로 확산됐다. 서울과 제주 등을 제외한 전국 11개 광역시 · 도 75개 시 · 군 · 구에서 발생했다. 동원된 인력만 공무원 군인 경찰 등 200여만명에 이른다. 공무원 8명이 방재 및 매몰 작업 와중에 과로로 순직하기도 했다. 도살된 가축 수도 사상 최대 규모다. 돼지 331만7864마리 등 총 348만여마리가 희생됐다. 2000년대 들어 발생한 4차례 구제역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구제역에 따른 재정비용은 매몰 보상비 1조8000억원을 포함해 총 3조원으로 추산된다.

현재까지 구제역으로 피해액이 가장 컸던 것은 2000년의 3006억원이었다. 그러나 이는 직접적인 정부 지출 예산만이다. 구제역으로 인한 관련 산업 등의 손실을 고려하면 피해액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번 구제역 사태가 사상 최악으로 치달은 것은 사태 초기 정부의 안이한 대응이 한몫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도 지난 1월 정부의 땜질식 처방을 인정한 바 있다. 검역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3일 안동에서 첫 구제역 의심신고가 접수됐으나 당국은 간이 키트 검사에서 음성으로 판정됐다는 이유로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했다. 백신접종시기를 놓친 것도 사태를 키웠다. 정부는 지난해 12월25일 처음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는 등 늑장대응으로 일관했다. ◆침출수로 인한 오염 우려

주무부서인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번 구제역 사태 동안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는 입장이다.

동물방역 담당자는 "(이번 사태 동안) 농식품부는 항상 잘해왔기 때문에 미진했던 점은 전혀 없었다"며 "앞으로 보완해야 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중대본도 이날 "대부분의 매몰지 보강 공사가 완료됐고 상태도 대체로 양호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정부의 설명과 달리 대규모 가축 매몰로 인해 발생하는 침출수 피해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얼었던 땅이 녹으며 매몰지 주변이 붕괴되거나 빗물이 스며들어 침출수가 바깥으로 흘러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가축 매몰에 따른 오염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 한다.

실제로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최근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모전리 일대의 구제역 매몰지 주변 지하수가 가축 침출수로 인해 오염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환경부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사용한 기법은 간이검증법에 불과하다"며 침출수로 인한 오염은 없다고 반박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