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조 브라질 고속鐵 수주 '빨간불'…건설 4社, 컨소시엄 이탈

건설 불황에 "저가 수주 땐 뒷감당 못한다" 발 빼
中 "정부서 사업비 85% 지원" 자금력 앞세워 공세

브라질 고속철도 한국사업단에 포함돼 있던 코오롱건설 현대엠코 삼환기업 한신공영 4개 건설회사가 참여를 포기하겠다고 사업단에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2008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이 브라질을 방문,수주 의지를 밝힌 뒤 국가적 차원으로 추진돼온 22조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가 단 한 곳의 시공사를 참여시키지 못한 채 표류할 위기에 놓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꼬이는 브라질 고속철도 사업사업단 관계자는 3일 "4개 건설사가 사업단 운영비 지급을 중단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사업단은 철도기술연구원을 중심으로 철도시설공사,현대로템,4개 건설회사,엔지니어링업체 등으로 구성된 민 · 관 합동기구다. 이 관계자는 "현재로선 브라질 고속철도 건설 참여를 위해 사업단과 약정을 맺은 건설사는 없다"고 설명했다.

사업단 참여를 검토해온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 대형 건설사도 건설업 불황에 브라질 고속철도의 사업 타당성이 불확실하다고 판단해 불참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성규 철도기술연구원 원장은 "브라질 정부에 이달 11일로 예정돼 있던 입찰 일정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며 "건설사와 응찰 가격에 관해 이견이 있지만 곧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질 고속철도 사업은 리우데자네이루~상파울루~캄피나스를 잇는 511㎞ 구간에 건설되는 총 공사비 22조원 규모로 한국을 비롯 중국 독일 스페인 브라질 기업이 수주 경쟁에 뛰어들었다. 철도기술연구원이 사업 초기부터 컨설팅을 수행하는 등 브라질 언론들은 한국 컨소시엄을 유력 후보로 꼽아왔다. 업계 관계자는 "브라질 고속철도는 프랑스 일본 등도 참여를 주저할 정도로 수익을 장담할 수 없는 구조"라며 "정부 쪽에선 총 공사비를 22조원가량이라고 얘기하고 있으나 실제 비용은 500억달러(약 55조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가 수주의 함정에 빠지면 자칫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수주 총공세

한국 컨소시엄이 내홍을 겪고 있는 사이 강력한 경쟁 상대로 거론되는 중국 컨소시엄은 수주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 국영기업 중국교통건설(CCCC)은 브라질 정부에 서한을 보내 고속철도 사업 입찰 참여 의지를 확인하면서 "수주하면 중국 정부에 사업비의 85%를 금융지원해 달라고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중국교통건설은 20여개 브라질 건설사들이 속한 파울리스타 공공건설기업협회와 컨소시엄 구성을 위한 협의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 고속철은 전체 사업비 가운데 30~40%를 수주업체가 제공하고,나머지는 브라질 정부가 부담하는 구조다. 브라질 정부가 수조원의 재정을 투입하는 것에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중국 정부의 금융 지원은 전체 판세를 좌우할 만큼 파괴력을 갖게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브라질 고속철도 외 다른 프로젝트도 난항에 빠졌다. 미국 플로리다 교통부가 2009년 발주한 115억달러 규모의 플로리다 고속철도가 대표적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현대건설이 컨소시엄을 구성,추진해왔는데 올초 새로 당선된 공화당 계열의 플로리다 주지사가 사업 자체를 철회했다. 최일권 한국철도협회 팀장은 "브라질에 비해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공사만 완료하면 발주처에서 돈을 내주는 정부 재정 사업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김영웅 KOTRA 실리콘밸리KBC 센터장은 "재원 마련에 곤란을 겪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중국 수출입은행과 물밑 교섭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한국 건설업체들의 철도 시공 경험이 적다는 점도 중국과의 경쟁에서 어려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가 지금까지 건설한 고속철도의 길이는 6920㎞에 이른다. 한국 내 고속철 연장(694.2㎞)의 10배다. 전문가들은 고속철도 수출 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브라질 프로젝트는 여전히 기회가 남아 있는데다 태국,인도,베트남,러시아,카자흐스탄,모로코,알제리 등 고속철도를 계획 중인 국가들이 수두룩해 포기할 수 없는 황금시장이라는 지적이다. 한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각 국가별로 사업 타당성이 어떤지를 검증하고 기업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지원방안을 적극 검토해야한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