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준법지원인制 공감대 없다"…재계 "대통령 거부권 행사해야"

청와대 "중복·과잉규제로 경영활동 위축"
기업 "지금도 감시제도 충분…아예 폐기를"

청와대가 3일 준법지원인제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섬에 따라 정부 차원의 보완이 불가피해졌다. 변호사들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난여론을 감안한 결과다. 보완방향은 대상기업을 대폭 줄이는 쪽이다. 경제계는 "늦었지만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왜 제동걸었나수석비서관 회의에선 상법개정안에 대한 문제점들이 집중 제기됐다. 5일 예정된 국무회의에 그대로 상정할 수 없다는 게 일치된 견해였다. 자칫 청와대마저 내년부터 로스쿨 졸업생들이 쏟아져 나오는 데 대비하기 위한 변호사 일자리 만들기에 동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들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김희정 대변인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든 것은 이런 정황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우선 국회 입법과정의 미비점을 지적했다. 한 관계자는 "상법개정안의 국회 논의 과정에서 관련 당사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준법지원인의 역할이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개정안은 준법지원인이 상장회사 임직원이 법령을 준수하며 회사 경영을 하는지를 감시하도록 했다. 기존의 회사 감사나 준법감시인,최고위험관리자(CRO) 등과 업무가 겹쳐 기업 입장에선 옥상옥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준법지원인 제도가 이중규제가 되면서 기업에 부담을 더하는 것이 아닌지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이 법안 자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시행령을 고치기로 했다. 국회와 극단적인 대결구도는 상당한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시행령으로 보완이 어려울 경우 대통령 거부권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재계 "전면 재검토 해야"재계는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결과"라는 반응을 내놨다. 이중 중복규제로 기업경영에 부담을 주는 제도로 판명이 난 만큼 정부 차원에서 시간을 갖고 다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변호사들의 일자리를 만들려는 '악법'이라는 국민적 평가를 반영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게 바림직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현석 대한상공회의소 전무는 "대기업을 비롯해 국내 상장사들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사외이사,감사 등 감시체계가 크게 개선됐다"며 "여기에 준법지원인을 또 두라는 것은 기업들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밖에 없어 반발이 심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감사와 공시책임자,내부회계관리자 등의 내부 감시체계를 갖추고 있으며,은행과 증권,보험 등 금융회사들은 별도로 준법감시인을 두고 있다. 법무 수요가 많은 대기업들은 자체 법무팀을 운영 중인 곳이 많아 법률로 준법지원인을 의무화하는 것은 인건비 부담만 늘린다는 비판도 많다.

준법지원인 제도를 자율적으로 실시한다고 해도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 이 기회에 제도 도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전무는 "자율적으로 하는 대신 도입 기업에 인센티브를 준다고 해도 도입을 안하는 기업 입장에선 마치 투명 경영을 안하는 것처럼 외부에 보일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며 "사실상 말만 자율이지 보이지 않는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고 강조했다.

홍영식/조재희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