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신공항 또 공약으로 부활하나

영남권 백지화로 국정능력 의심
'갈등의 정치' 갈수록 신뢰 잃어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건설 백지화 발표에 대해 예상대로 영남권 여당의원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백지화 결정은 2년간만 유효할 뿐"이라는 것이 이들의 선포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미래에 신공항이 필요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함으로써 신공항은 내년 대선 공약으로 다시 부활할 것이 거의 분명해졌다.

동남권 신공항 투자가 과거 경부고속도로나 인천공항처럼 향후 성공을 거둘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문제다. 10조원대의 건설비가 소요되는 신공항은 원래 김해공항이 수십년 뒤 포화상태에 이를 것을 대비해 전임 정권에서 검토된 것이다. 그 후 경제성이 의문시된다는 논의가 제기돼 거의 백지화됐고,그럼에도 2007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대선공약으로 다시 내세워 되살아났다. 그러나 2009년 김해공항의 활주로 이용률은 30.6%에 불과했으며,서울~부산 KTX가 하루 120회씩 운행됨에 따라 현재 공항이용률은 20%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고 한다. 영남에도 허브공항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한국이 두 개 허브공항을 수용할 만한 능력을 가졌는지부터 검토해야 할 문제다. 일본은 1994년 22조원을 들여 간사이공항을 건설해 이를 시도했지만 도쿄 및 오사카 권역으로 항공 수요가 분산됨으로써 작년 말 간사이공항 총부채가 18조원에 육박하는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인천공항은 2017년 여객처리능력 4400만명을 6200만명으로 늘리는 3단계 확장공사를 이미 추진 중이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그래도 공항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그간 이 목적으로 건설된 예천,양양,울진,무안 등 무수한 애물덩어리 유령공항의 사례가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기왕의 공약을 사과하고 새로운 경제성 검토 지시와 그 결과에 따른 백지화 결정을 한 것은 분별 있는 처사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의나 절차가 우리의 지역정치세력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부산시 한나라당 위원장은 신공항평가위원회가 내린 밀양 39.9점,가덕도 38.3점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평가이므로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영남권 의원과 시장들이 원하는 답은 오직 박 전 대표가 말한 "미래에 필요하다는 확신"일 뿐이다. 오늘날 신공항의 실패보다 우려되는 것은 국가사회의 합리적 의사조정기능이 이렇게 총체적으로 마비되는 현상이다. 작년 이 정부는 정권의 명운을 걸고 '세종시 수정안'을 제출했다. 그 후 행정부 이전이 국가적 재앙인가 균형발전인가에 대해 지식인,전문가,시민단체가 총동원된 건국 이래 최대의 찬반논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수정안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이런 토론이나 국민여론이 아니다. 어느날 한 실력자가 신호를 보내자 여당의 한 파당이 결속하고 반대에 줄을 선 때문이었다. 이로써 모든 국가사업에 중앙정부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고 오직 지역이기집단의 결속력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투쟁만이 승리한다는 학습효과가 남겨졌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정권이 175개 공공기관,16개 혁신도시 · 기업도시를 '지역이권'으로 나눠 준 이래 전국이 이권 사냥터,포퓰리즘 살포장이 됐다. 국익,사업성 따위는 무의미해졌다. 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주민들의 이권 싸움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線)이 없어졌다. 이는 이제 경제적 폐해만 우려할 문제가 아니다. 정치가와 지역민들은 절제와 염치를 모르는 국민으로 타락하고,국민일반은 국가의 권위와 민주주의 정치에 신뢰를 잃고 있다. 이것은 바로 국가공동체의 존립 근거가 붕괴되는 문제다. 향후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최소한 이런 따위 공약을 접어야 한다. 정말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신념이라면 당선 후 사업팀을 만들고 국민여론의 수렴을 추진하기 바란다. 국민도 이젠 이런 후보에게 표를 팔지 않을 때가 되지 않았는가.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