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격(格)이 있어야 부자다

부자의 유형을 보면 열심히 노력해서 어느 순간 부자가 되었거나, 아니면 복권처럼 갑자기 횡재를 하여 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이들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다. 부자와 졸부의 차이를 아는 방법은 목욕탕에 가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돈 주고 들어왔으니 물을 함부로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졸부고, 남의 틀어놓고 간 물도 잠그는 사람은 부자다. 이처럼 진정한 부자는 작은 물건 하나라도 대하는 것이 다르다. 처음부터 부자가 아니었음을 잊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 부자다. 한마디로 부자는 격이 다르다.

지인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사주에 재물 운이 있다고 역술인이 말했다며, 그 운이 언제쯤 오는지 궁금해 했다. 그 사람은 곧 부자가 될 것처럼 들떠 있지만 사주에 재물 운이 있다고 해서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재물 운이 있어도 담을 그릇이 준비된 사람만이 부자가 될 수 있다. 자기 그릇 이상은 바라지 않는, 즉 욕심 부리지 않는 사람이 부자가 된다는 말이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직 후 재테크를 잘해서 제법 재산을 모으신 분이 있다. 2년 전 노후대책과 가족들 생활을 위해 은평구의 전철역 부근에 위치한 상가건물을 사기로 하고 매매계약을 했다. 지병이 있던 그 분은 병원에 입원했는데 며칠 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치르고 부인이 상가계약을 인수하기로 하고 잔금을 지급하기로 한 전날, 부인은 돌연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통보를 했다.

아들이 있기는 하나 자신이 도저히 그 상가를 관리할 자신이 없는 것이 취소이유였다. 살림만 하던 사람이 난생 처음 상가를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에 며칠 밤을 잠도 못 잤는데, 문득 이러다가 자신마저 병이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부인은 비록 계약금은 포기했지만 마음은 편하다며 건물주인과 식사를 하고 서로 미안한 마음을 나누었다.

계약을 포기한 부인은 재산보다는 건강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 부인은 상가를 관리할 자신이 없고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재산을 지키고 싶지 않았고, 재산보다는 여생을 건강하게 살기를 원했다. 얼마 전 그 부인이 대학로 다사모 모임에 나왔다. 그때 포기한 계약금이 아깝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마음 고생하는 것보다 편하게 살고 싶었고, 지금도 그 결정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계약금과 편안한 여생을 바꿨다고 웃으며 말했다.재물은 자신이 가진 그릇만큼만 가지면 탈이 없다. 자기그릇보다 많이 가지려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재물에 집착하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화(禍)가 되며, 재물이 화로 변하면 처음부터 안 가짐만 못한 결과를 만든다. 재물은 건강한 삶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고, 행복은 재물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미국 경제학자들이 복권의 당첨자들을 조사한 결과, 절반 넘는 사람들이 5년도 안 돼 당첨금을 모두 날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횡재한 그들이 짧은 기간 안에 파산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학자들은 직접 벌어서 얻은 돈과 그냥 갑자기 생긴 돈을 쓰는 방식의 차이 때문에 그런 것이라 말한다. 쉽게 생긴 것은 쉽게 나간다고 했던가, 이처럼 재운이 올 때는 복(福)과 화(禍)가 함께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재물은 관리를 안 하면 화가 되고 자칫 몸까지 상하게 한다. 다시 말하면 재물은 관리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머문다는 얘기다.

만화가 허영만의 <꼴>에 보면 ‘격(格)이 낮은 자가 갑자기 큰돈이 생기면 수명이 짧아진다.’고 했다.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이 격(格)이며, 격이 낮은 사람은 포기할 줄 모르고 비울 줄 모르는 사람이다. 불필요한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격(格)을 유지하는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이다. (hooam.com/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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