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국책사업] (1) "한 표가 급한데…안될줄 알면서 무조건 담아 일단 질렀다"
입력
수정
(1) 출발부터 어긋났다2007년 4월5일 대구를 방문한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동남권 신공항을 만들어 대구가 세계로 통하는 하늘 길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현지 지역민들이 동남권 신공항에 대한 입장을 묻자 예정에 없이 답변한 것이다. 당시 수행한 후보 정책팀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질문과 답변이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며 "나중에 발목이 잡힐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당시엔 어쩔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동남권 신공항,세종시,과학비즈니스벨트 등 공약했다가 뒤집힌 주요 국책과제는 이렇게 출발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다. ◆"지방공약,일단 작성하고 보자"
MB 브레인 "국책사업 공약 이렇게 만들었다"
요구 들어줘야 찍어준다는데 어떻게 거절하나
초반에 옥석 가려야 하는데 미루다가 화 키워
대선 때 이 대통령의 핵심 정책 브레인들은 한결같이 "지역 공약은 경제성을 면밀하게 따져볼 여유도 없었고 여건도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 정책기획팀장을 지낸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중앙공약과 달리 지방 공약집은 각 지역에서 해 달라는 요구를 받아서 그대로 나열하는 수준이었다"며 "예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들어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대선 캠프 정책팀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도 "동남권 신공항이든,세종시든 누가 특별히 공약하자고 한 게 아니고 지역에서 원하니까,표 때문에 거절할 수 없어 일단 공약집에 올려놨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선 캠프 정책상황실 부실장을 맡았던 김영우 한나라당 의원은 "지역 숙원 사업은 대선팀에서 별 검토 없이 공약 항목으로 그냥 넣는다"며 "후보가 지역을 다니며 선거운동을 하는데 지역의 요구 사항을 빼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지난 정부에서 추진해오던 것을 어떻게 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제도적 허점도 꼽았다. 김 의원은 "엄격한 선거법 때문에 경제성을 면밀하게 따지는 게 어려웠다"며 "한반도 대운하의 경우 전문가 그룹을 만들어 토론회 한 번하고 나서 사전 선거운동한다고 하루종일 선관위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동남권 신공항도 제대로 된 정책 검증을 하려면 공청회와 토론회 등을 거쳐야 하고 대선 캠프에 관련 전문가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게 김 의원의 전언이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맡고 있을 때부터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해온 조해진 한나라당 의원은 "신공항은 이전 정부 때부터 타당성이 있다고 검토한 사안이어서 이를 기초로 공약화했지만 B/C(비용 대 편익 비율) 분석을 할 수 있는 시간적,인적 여력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용역을 줘야 하지만 보안 유지가 안돼 상대 후보가 비슷한 것을 공약으로 만들어 대응해오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세종시의 경우 대선 때부터 원안대로 해서는 안 되고 경제 교육 과학도시로 가야 한다는 방침이 정해졌으며 청사진도 나왔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후보와 마찬가지로 원안을 준수하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공약 되돌리기 타이밍 놓쳐
후보 시절엔 공약에 대한 정밀 검증에 한계가 있다손 치더라도 정부 출범 이후에는 세밀하게 살펴볼 여력이 있었지만 매번 타이밍을 놓쳤다. 김 의원은 "대선에서 승리한 후 공약 중 스크린해서 될 것과 안 될 것을 빨리 고르고 결정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조속한 백지화를 가로막은 가장 큰 이유로 선거를 꼽았다. 지역 의원이나 자치단체장들이 다가오는 재 · 보궐선거나 지방선거 등을 의식해 결정을 미뤄 달라는 요구를 해와 국책 사업의 타당성 검토 및 발표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동남권 신공항도 2009년 말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결론이 났지만 해당 지방 출마자들이 이듬해 지방선거 때문에 선정 발표를 미뤄 달라고 요청했다.
홍영식/구동회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