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헛바퀴 도는 고속철 수주전

김황식 국무총리는 올초 지우마 호세프 신임 브라질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브라질 고속철과 관련해 "준비를 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에 찬 듯 추가 선물도 내놨다. "수주하면 공사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때만 해도 한국형 고속철의 첫 해외 수출에 큰 난관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브라질 고속철 수주를 위해 민 · 관 합동으로 구성된 한국 사업단 내부에선 종기가 곪아가고 있었다. 사업단은 2월25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사업단을 이끌고 있던 서선덕 한양대 교수를 해임했다. 급기야 지난 1일엔 현대엠코,코오롱건설,한신공영,삼환기업 등 4개 건설회사가 탈퇴를 선언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김 총리가 브라질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호언장담을 하던 무렵,사업단은 회원 기업의 해외영업 및 재무 전문가들을 모아 수익성 검토 작업을 다시 하고 있었다. 서 교수를 중심으로 추진했던 사업서 작성에 오류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약 두 달간의 조사 끝에 내린 결론은 사업단 내부에서조차 '충격적'이라고 할 정도로 예상을 벗어났다.

민자사업이라 금융 조달이 관건이었는데,브라질 은행들이 연 11%대의 시중금리 수준을 요구하는 등 "이대로는 수주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사업단이 이사회를 열어 이 같은 결과를 알리자 참여 기업들은 뜨악했다.

A건설사 관계자는 "브라질 고속철 한국사업단이 구성된 이래 처음 이사회가 열렸던 것"이라며 "내용도 워낙 예상과 달라 사업 참여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2008년11월 출범한 사업단이 회원사의 의사를 반영할 구조조차 없었다는 얘기다. 사업단이 '내홍'으로 흔들리고는 있지만 브라질 고속철 수주전에서 한국은 여전히 유력 후보다. 브라질 정부의 사업 타당성 조사도 한국의 컨설팅으로 이뤄지는 등 사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참여한 덕분에 현지 분위기도 한국에 우호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는 철저하게 수익성 위주로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쏟아부은 돈과 무형의 열정만 해도 상당하다. 문제가 무엇인지 드러난 만큼 이제부터라도 만시지탄의 후회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

박동휘 산업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