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iz School] 날마다 신상품 내놓는 H&M, 기획서 출시까지 3주면 '뚝딱'

Best Practice…패스트패션의 名家 'H&M'
자체공장 없고 디자인만 맡아
방글라데시·中에 생산 공장
한 해를 52시즌으로 나누고 출시 4주 지나도 안팔리면 할인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은 이달 중순 리뉴얼 개장을 앞두고 승부수를 띄웠다. 고가 명품을 상징하는 루이비통과 저가 패스트 패션업체(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해 제품을 빠르게 제작 · 유통시키는 업체)인 헤네스앤모리츠(H&M)를 1층에 함께 입점시키기로 한 것이다. 비슷한 가격대의 브랜드를 같은 층에 입점시키는 기존 업계 관행과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것이다. 루이비통과 H&M이 같은 층에 입점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며,세계적으로도 드물다.

H&M의 브랜드 성격이 루이비통과 다르지만 가치는 그에 못지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H&M은 브랜드 컨설팅 전문업체인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2010년 세계 10대 브랜드' 패션 분야에서 루이비통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세계 39개국 2200여개 매장에서 지난해 21조7000억여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년 200개 이상 새 매장을 열면서 10~15%씩 성장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H&M의 이런 상승세에 주목,루이비통과의 동반 입점을 결정했다. 입점 매장 중 H&M에만 별도의 전용 출입문을 허용하는 '특혜'까지 제공했다.
◆매일 신상품 공급

H&M은 스웨덴의 의류 브랜드다. 스페인의 자라(ZARA),일본의 유니클로(UNIQLO)와 함께 글로벌 패스트패션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패스트패션업체답게 빠른 제품 회전율이 이 회사의 최대 강점이다. 한 해를 52시즌으로 나눠 각 매장에 매일 신상품을 공급하고,연간 5억여개의 아이템을 판매한다. 중간 유통단계를 없애 기획에서 완제품 출시까지 3주 만에 끝낸다.

H&M은 자체 공장이 없다. 본사에서 디자인만 하고 방글라데시 중국 파키스탄 터키와 같이 인건비가 싼 나라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유럽에 10개,아시아에 10개,아프리카에 1개의 프로덕션 오피스(production office · 생산관리 사무소)를 두고 700여개의 아웃소싱망(網)을 관리한다. 속도가 빠르다고 품질관리가 소홀한 것은 아니다. H&M의 모든 상품은 스톡홀름 본사에 있는 100여명의 디자이너들이 기획한다.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못지않은 감도와 최신 유행의 제품을 만들어낸다. 자사 바이어들이 세계 시장을 돌며 수집해 온 시장 트렌드 분석 자료가 제품 기획의 기반이 된다. 이를 토대로 제품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반성도 이뤄진다. 출시 후 4주가 지나도 매출이 저조한 품목에 대해서는 바로 가격 인하에 들어간다. 날씨 영향,출시 시점,트렌드 등 다각적인 각도에서 원인을 분석해 다른 상품을 출시할 때 반영한다.

◆지역 특화 전략과 협업 경영

H&M은 매장 운영방식이 독특한 것으로 유명하다. 본사에서 제시하는 단 한 개의 매뉴얼로 세계 각지의 매장을 통일시키는 경쟁업체들과 달리 지역적 특성에 기반한 운영전략을 채택한다. 지역과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철저히 분석한 뒤 그에 적합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예들 들면 유럽에서는 패밀리 브랜드임을 강조하는 반면,미국 시장에서는 여성 소비자를 집중 공략한다. 뉴욕에는 각 매장 1층에 여성복을 배치하고 여성만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흑인 빈민가인 할렘에 매장을 열 때는 지역 초등학교 음악프로그램에 수익금을 기부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할렘 경제의 활성화와 흑인 여성 고객 창출이라는 기업의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잡기 위해서다.

H&M은 유명 디자이너와의 '컬래버레이션'(협업)으로도 이름이 높다. 2004년 샤넬 수석디자이너였던 칼 라거펠트의 독점 컬렉션과의 작업이 첫 사례였다. 지금은 다른 브랜드들도 같은 시도를 하고 있지만,라거펠트와 함께 했던 컬래버레이션 제품은 판매 1시간 만에 동이 났을 정도로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스텔라 매카트니,마돈나,로베르토 카발리,지미추,랑방 등과 공동 작품을 내놓으면서 매 시즌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신디 크로퍼드,나오미 캠벨과 같은 톱모델과 할리우드 스타들을 광고와 프로모션 이벤트에 등장시키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지속가능 패션'이 모토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은 옷을 만들고 관리,폐기하는 과정에서 버리는 쓰레기양과 탄소배출량이 많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나 H&M은 에너지와 자원 사용량이 많은 중공업이나 첨단산업 중심으로 다뤄지던 '지속가능 경영'이 패션 업종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며 '지속가능 패션(sustainable fashion)'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고 고객의 건강을 중시한다는 것이 H&M의 모토다.

본사 직원의 8%가 지속가능 경영 부서에서 일한다. 환경 친화적인 경영 방침은 원료 획득에서부터 재료 가공과 의류 생산,운송 및 판매와 의류의 실제 착용에 이르기까지 서플라이체인(공급망) 전반에 걸쳐 적용된다.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쓰지 않은 유기농 면의 사용도 해마다 크게 늘리고 있다. 또 면화 재배 농민들에게 더욱 친환경적인 경작법을 보급하고 있다. H&M의 2009년 탄소 배출량은 2004년에 비해 32% 감소했다.

◆후임 키워야 승진

H&M은 '넥스트 미(Next Me)'원칙을 준수한다. 모든 관리직은 자신을 대체할 후임을 육성해야만 승진할 수 있는 제도다. 부하직원과의 관계를 리더십의 주된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비정규직이라도 5년 이상 근무하면 격려금이 지급되며,본사 임원이라도 1년에 한 번 이상은 매장에서 상품을 판매해야 한다. 헤드헌터를 통해 외부 인사를 영입하기보다 퇴직자나 전직자들 중에서 간부 적임자를 모색하는 것도 직원들의 책임감과 소속감을 높이고 있는 비결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