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빠진 엔화, 강해진 호주달러…엔 캐리 트레이드가 돌아왔다
입력
수정
G7 개입 효과·日 2013년까지 제로금리 전망…지진피해 커지면서 '급격한 청산' 우려도주요 7개국(G7)의 환율시장 개입으로 엔화가 약세를 이어가자 엔 캐리 트레이드 투자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일본의 저금리와 엔화 약세 그리고 선진국들의 금리 인상 움직임 등이 엔 캐리 트레이드에 최적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엔화 약세가 시장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닌 데다 일본이 재해 복구를 위해 해외 자금 환수에 나설 경우 엔 캐리 트레이드가 급격히 청산되면서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볼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 다시 활개5일 외환시장에서는 달러당 엔화 가치가 84.3엔대로 최근 6개월래 최저치 수준으로 밀렸다. 엔화 가치는 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후 한때 76.25엔까지 치솟았지만 G7이 엔화 가치 안정을 위해 시장에 개입한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85엔대를 넘보고 있다. 마켓워치는 엔화 약세를 두고 "엔 캐리 트레이드가 돌아왔다"고 분석했다. 즉,투기적 투자자들이 은행에서 엔화를 빌려 외환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호주달러 또는 캐나다달러로 바꾸거나 달러로 교환한 후 주식 또는 원자재에 투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주요 투자처 중 하나인 호주달러는 지난달 17일 이후 엔화에 대해 강세를 보이고 있다. 호주달러당 엔화 가치는 지난달 17일 79엔대까지 올라갔다가 5일에는 81.7엔까지 떨어졌다. 호주는 기준금리가 4.75%로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엔화를 빌려 호주달러에 투자하면 환차익과 함께 금리도 챙길 수 있다. 데이비드 송 데일리FX 외환전략가는 "G7의 외환시장 개입이 결과적으로 시장에 엔 캐리 트레이드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선진국 경제권에서 유럽이 먼저 금리를 올릴 것으로 관측되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가 더욱 활개칠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경제 전문가들은 일본은행이 2013년까지는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오히려 6~7일 열리는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대출 프로그램 등 추가 통화완화 정책을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유럽중앙은행(ECB)은 7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니시 도무 도이치증권 외환담당헤드는 "대지진과 원전 사고 여파로 일본의 무역흑자 규모가 크게 줄고 엔화가 안전통화라는 인식도 사라지게 됐다"며 "엔화가 추세적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장성 재무관 시절 '미스터 엔'으로 불렸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아오야마가쿠인대 교수도 이날 "엔 · 달러 환율이 90엔을 넘어가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
엔 캐리 트레이드의 흐름이 단기간에 바뀔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마켓워치는 이날 "일본의 대지진 피해 규모 추정치가 계속 높아지고 있고 원전 사고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어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금융회사들과 기업들이 대지진에 따른 피해 복구 자금을 대기 위해 해외 자산을 팔아 엔화를 자국으로 환수하면 엔화는 강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의 엔화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라 G7의 개입으로 왜곡된 수치여서 엔화가 일단 강세로 돌아서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청산될 경우 주식 부동산 원자재 등 세계 자산시장은 또다시 거품론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2008년에도 미국 금융위기로 엔화가 초강세를 보이자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급속히 청산되면서 주식과 원자재 가격이 폭락했다. 볼프강 코에스터 파이어앱스 최고경영자(CEO)는 "지금 상황에서 엔 캐리 트레이드는 수익 못지않게 리스크도 높다"며 "변동성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 엔 캐리 트레이드
yen carry trade.금리가 낮은 일본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다른 나라 통화나 자산 등에 투자해 차익을 노리는 투자 기법.일본이 장기간 저금리를 유지하면서 다른 국가와 금리 차이가 커지자 2007년에는 투기적 투자자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 규모가 최고 1조달러에 달하기도 했다.
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