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의견 묵살한 기름값 대책] TF참여 교수 "정유사 폭리 아니다"…정부 "면죄부 주냐" 면박

알맹이 없는 발표…무슨 일 있었나
윤원철 교수 "처음부터 문제 잘못 짚어"
두 달 넘게 연구해도 뚜렷한 결론 못내
"기름값이 묘하다"는 지난 1월 이명박 대통령의 지적 이후 정부가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만든 석유가격 태스크포스(TF)는 크게 두 가지 과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첫째,국내 기름값이 국제 유가가 오를 땐 빨리 오르는데,내릴 땐 천천히 내리는 것 아니냐는 비대칭성 의혹이다. 둘째는 국내 정유사가 싱가포르 국제 석유시장을 참조해 국내 기름값을 정하는 석유가격 결정 방식의 타당성 여부다. 결과적으로 TF는 두 가지 모두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알맹이 없는 '비대칭성' 판정정부는 6일 TF 조사 보고서에서 "분석 기간 중 항상 비대칭성이 발생한 것은 아니나,비대칭성이 나타난 사례가 상당수 확인됐다"고 밝혔다. 1997년 1월~2007년 5월에는 정유사 가격이 원유가격 및 국제 제품가격과 모두 비대칭적이었고,2008년 5월~2010년 12월과 2009년 1월~2011년 2월에는 국제 제품가격과 비대칭적이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비대칭성 원인으로는 유통 과정 전반을 지목했다. 국내 시장이 4대 정유사 과점체제로 굳어지면서 가격 경쟁이 제한됐고 주유소는 판매가격을 높게 책정하려는 경향이 비대칭성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기름값이 오를 때는 저렴한 주유소를 찾다가 기름값이 내릴 때는 가격에 덜 신경 쓰는 소비자 행태도 주유소가 기름값을 덜 내리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분석은 알맹이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윤원철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비대칭성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정유사가 나쁘다거나 폭리를 취했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TF팀장을 맡은 이관섭 지식경제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은 이에 대해 "비대칭성의 결과만으로 폭리나 담합이 있었다는 결론을 낼 수 없겠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비대칭성을 줄여가는 정책을 쓰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정부,아전인수 해석정부가 비대칭성을 검증한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1997년 1월~2007년 5월 자료는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 기간 정유사 공급가격은 실거래가가 아닌 공시가격이란 점에서다. 공시가격은 이를테면 희망소비자가격에 불과해 데이터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TF 내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로 이 기간의 비대칭성 여부에 대해서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정부는 "비대칭성이 상당수 확인됐다"는 근거로 상당한 의미 부여를 했다.

TF보다 앞서 국내외에서 진행된 선행 연구도 과연 비대칭성이 존재하는지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TF 조사 결과 과거 21건의 국내외 조사 중 10건은 석유가격이 대칭적인 것으로 나타났고,11건은 비대칭적이었다. 딱히 대칭적이다,아니다를 판정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결론 없는 가격결정 방식

석유가격 결정 방식에 대한 TF의 결론은 실속이 더 없다. 그동안 정부 일각에선 싱가포르 국제 석유시장에 연동하지 말고 원가에 적정이윤을 더하는 방식으로 기름값을 정하자는 지적이 제기됐다. 석유제품은 통상 30~45일 전 선적한 원유를 정제해 생산하는데 국제 유가 상승기에는 원유 도입가격이 시중가격보다 싸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TF는 원가 연동제 역시 한계가 많다고 지적했다. 우선 경쟁이 충분하지 않으면 가격 인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TF의 판단이다. 한국처럼 과점체제에선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석유제품은 하나의 원료에서 여러 가지가 나오기 때문에 원가 산정이 어렵고 적정이윤에 대한 객관적 평가 기준을 마련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원유를 정제하면 휘발유 경유 등유 액화석유가스(LPG) 등 20여개 제품이 쏟아지는데 어떻게 일일이 원가를 계산하고,적정이윤을 정할 거냐는 말이다. 정부는 결국 "각 가격결정 방식 모두 한계가 있다"며 "근본적으로는 국내 석유제품 시장 개설을 통해 국내 수급요인을 반영하는 국내 가격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는 애매한 대책을 내놓는 데 그쳤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