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교수의 경제학 멘토링] 국제수지와 외화보유액의 변화

국제거래에 따라 외화는 국외로 유출되기도 하고 국내로 반입되기도 한다. 수출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수입은 외화를 소모한다. 외국인 기업이 국내에 투자하면 투자자금만큼의 외화가 국내로 들어오고 이들이 이익금을 가져가면 그만큼의 원화가 외화로 환전돼 국외로 나간다. 정부 또는 국내 기업이 외국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빌려오면 외화가 들어오고 그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면 나간다.

대부분의 국제거래는 이처럼 국경을 넘나들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가령 외국인 여행객이 달러를 가지고 입국하면 그 돈은 국내에 들어왔지만 아직 외국인 손에 있다. 여행객이 국내은행에서 원화로 환전해야 비로소 환전액만큼의 달러가 국내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경을 넘나드는 거래만이 아니라 국내 거주자와 비거주자 간의 모든 거래를 국제거래라고 파악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일정 기간 동안 국내 거주자와 비거주자 사이에서 발생한 외화이동 동향을 집계한 것을 국제수지(BOP · balance of payments)라고 한다. 외화의 국내 유입이 국외 유출보다 더 많으면 흑자(surplus),반대로 더 적으면 적자(deficit)라고 말한다. 한국은행이 외화보유액을 늘리기 위해 해외에서 빌려온 외화는 환전되지 않고 그대로 한은 내에 보관된다. 그러나 국제수지 흑자로 순유입되는 외화의 많은 부분은 국내 원화로 환전된다. 예컨대 수출기업이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주고 납품업체에 대금을 지불하려면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환전해야 한다.

국내에 반입된 외화가 원화로 환전되면 그만큼의 통화량이 시중에 추가로 풀려나간다. 그러므로 국제수지 흑자는 한은이 의도하지 않은 통화공급 확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환율정책도 마찬가지다. 수출을 돕기 위해 환율을 높게,즉 외화의 값을 비싸게 유지하려면 한은이 시중의 외화를 적극 매입해야 하므로 매입 금액만큼의 통화량이 시중에 추가 공급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국제수지가 흑자이거나 고환율정책을 펼칠 경우에 그에 따라서 증가하는 통화량을 환수하는 별도의 조치를 함께 추진해야 물가상승을 피할 수 있다. 국제수지는 민간부문의 정상적 국제거래를 통한 외화의 이동 현황은 물론 외화보유액을 적정선으로 유지하려는 한은의 조치 내용을 함께 반영하는 수준에서 그 규모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외화 유출입의 총량을 나타내는 전체 국제수지만으로는 국제거래의 내용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국제거래가 외화를 벌어왔는지,아니면 빌려왔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국제수지 구조를 더 세부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이승훈 <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