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중세 연금술사가 '시험관 아기'를 알았다?

상상,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 / 몸, 멈출 수 없는 상상의 유혹 / 임정택
/ 허정아 지음 21세기북스 각 권 247쪽ㆍ1만3000원 255쪽ㆍ1만3000원

상상이 만든 과학·예술·문학…인간은 본래 '호모 이마기난스'

과학과 예술,역사와 문학 등 인류 문명 속에서 '상상력'이란 단어를 빼놓을 수 있을까? 생래적으로 결핍을 느끼는 인간은 늘 무언가를 욕망하고 꿈꿨던 '상상하는 인간',즉 '호모 이마기난스(Homo Imaginans)'였다. 개인과 기업,국가 사이의 생존 경쟁이 한층 치열해진 21세기야말로 비로소 상상력이 각광받는 시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다. 상상력이 현실화하는 시간이 과거에 비해 짧아졌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을 뿐이다.

21세기북스와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가 상상력이라는 키워드로 인문학을 풀어냈다. '상상에 빠진 인문학' 시리즈의 첫 주자로 《상상,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과 《몸,멈출 수 없는 상상의 유혹》을 출간했다. 다음달부터 '지도' '얼굴' '영화' '음식' 등을 소재로 한 시리즈들이 추가로 나올 예정이다. 《상상,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은 진정한 상상력이 네트워크,혹은 융합과 거의 같은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이질적인 것들을 결합시키는 능력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억압적이고, 종교적 엄숙주의가 만연한 중세 유럽에서 연금술은 인간의 상상력이 꽃피웠던 분야다. 값싼 금속이나 비금속 물질을 금이나 은으로 바꾸겠다는 인간의 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근대 화학과 의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여러 물질을 분리하고 배합하는 시행착오를 통해 질산,염산,황산 등 수많은 물질을 발견한 것이다.

필리푸스 파라셀수스라는 연금술사는 '호문쿨루스'라는 인조인간을 만들기 위한 비법서를 작성했다. 그는 사람의 정액을 병에 넣고 40일 동안 말똥거름에 묻어 두면 정액이 자력을 띠고 이것을 암말의 자궁과 같은 상태에서 40주 동안 사람의 피를 공급해 키우면 인조인간이 된다고 주장했다. 마치 오늘날의 시험관 아기를 연상시킨다. 현대의 유전과학이나 복제인간에 대한 연구도 일찍이 연금술사들의 상상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어떨까. 환상적인 요소를 내포한 상상력이 도구적 이성주의의 결과물인 과학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몸,멈출 수 없는 상상의 유혹》은 인간의 몸에서 출발하는 상상력을 그린다. 중국의 철학서인 《열자》의 '탕문'편에는 전국시대 명의인 편작의 이야기가 나온다. 노나라의 공호는 의지는 강하지만 기질이 약해 무슨 일이든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다. 반면 조나라의 제영은 의지는 약하지만 강한 기질 탓에 일단 시작하면 결실을 보고야 마는 성격이다. 편작은 두 사람을 사흘 동안 혼수상태에 빠뜨린 후 가슴을 열고 심장을 꺼내 서로 바꿔 넣는다. 수술 덕분에 두 사람은 마음이 바뀌어 집으로 돌아간다. 인간의 기질이 심장 때문이라는 것 자체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심장이식 수술에 대한 당시의 상상력은 놀랄 만하다.

그런데 2006년 '뉴욕포스트'는 63세의 윌리엄 세리던이라는 한 남자가 뉴욕에서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후 평소 전혀 관심을 갖지 않던 그림 그리기에 빠졌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것도 놀랄 만한 수준의 작품을 만든다는 내용이다. 알고 보니 심장 기증자가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후 미국 애리조나대의 게리 슈워츠 교수는 '세포 기억'이라는 개념으로 이 현상을 설명했다. 간이나 심장,근육에 저장된 에너지나 정보가 장기 이식자에게 옮겨져 기질이나 재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몸과 성에 대한 인류 태초의 상상력부터 몸과 영혼의 분리,몸의 변신,가면과 문신의 역사,오늘날 인터넷 공간 속 가상현실,트랜스젠더,기계와 인간의 융합체인 슈퍼휴먼까지 소재를 다양하게 확장시킨다. '상상력에 빠진 인문학' 시리즈는 다소 잡기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인문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신선한 관점을 흥미롭게 제공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