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팔만 비틀면 될줄 알았는데…'묘한 기름값' 정부만 몰랐던 5가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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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유소엔 '약발' 안먹혀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월 "기름값이 묘하다"고 발언한 이후 정부가 정유사를 상대로 벌인 '기름값 전쟁'의 손익계산서는 어떨까.
(2) 유류세 인하 여론만 커져
(3) 3개월후가 더 걱정
(4) 석유TF 알맹이 없어 '무능'
(5) 정부 친기업 기조 '후퇴'
얼핏 보면 정부가 상당한 성과를 낸 것처럼 보인다. 정유사들이 지난 7일부터 3개월간 기름값을 ℓ당 100원 인하하기로 했고,민관합동 석유가격 태스크포스(TF)는 "국제유가와 국내 기름값 사이에 (가격이 따로 움직이는) 비대칭성이 상당수 확인됐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만 키웠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첫째,정부는 정유사 기름값만 내리면 된다고 안이하게 판단했다. 주유소가 문제될 줄은 몰랐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8일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판매가격은 ℓ당 평균 1950원29전으로 정유사의 기름값 인하 조치 하루 전인 6일(1970원92전)보다 20원63전 떨어지는 데 그쳤다.
주유소협회는 "정유사가 사전 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내렸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유사의 가격 할인 전에 사들인 재고가 소진되기까지는 가격 인하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기름값 100원 인하'를 기대하고 주유소를 찾은 소비자들만 골탕을 먹은 것이다. 정부는 지난 8일 물가대책회의를 열고 "주유소 가격 실태를 현장점검하겠다"고 부랴부랴 발표했지만 '뒷북 대책'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둘째,유류세 인하 여론이 더 높아졌다. 정유사들이 기름값을 낮추면서 정부도 유류세 인하를 마냥 거부하기 힘들게 됐다. 정유사를 압박해 기름값을 낮추도록 해놓고 정작 정부는 뒷짐만 지는 모양새는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기름값의 50%를 차지하는 유류세를 내리지 않고서는 소비자가 기름값 인하를 체감하기 어렵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일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겠다"며 종전 '유류세 인하 불가'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셋째,3개월 뒤 기름값이 걱정이다. 국민이 체감할 정도로 인하 폭을 키우려다보니 정유사들은 '3개월 동안'만 기름값을 낮추기로 했다. 한시적 인하 조치가 끝나는 7월7일부터는 기름값이 ℓ당 100원 오르게 된다. 소비자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는 얘기다. 게다가 국제유가도 계속 상승하고 있다. 정유사들이 국내 기름값을 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싱가포르 국제석유시장의 무연휘발유 가격은 지난 8일 배럴당 128달러11센트를 기록,6일(125달러78센트)보다 2달러33센트(1.9%) 상승했다. 국제유가가 계속 오르면 기름값 인하 효과는 급속하게 사라진다. 전문가들은 "인위적 시장 통제는 결국 부작용만 낳는다"고 비판했다.
넷째,기름값을 잡기 위해 정부가 각계 전문가와 함께 꾸린 석유가격 TF 활동은 정부의 무능함만 드러냈다. TF는 지난 6일 국제유가와 국내 기름값 사이에 비대칭성이 상당수 확인됐다고 밝혔지만 "그렇다고 정유사가 폭리를 취했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알맹이 없는 대책만 내놨다. "정부 스스로 정유사에 면죄부를 준 꼴"이란 지적이 나온다.
다섯째,'정유사 팔 비틀기' 논란도 부담이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한 포럼에서 "한국전력이나 설탕 업체들은 적자를 보는데도 정부에 협조하는데 영업이익을 내는 정유사들이 성의 표시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정유사를 압박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초부터 정유사의 담합 혐의를 조사 중이다. 전문가들은 '기름값 전쟁'을 치르면서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 기조'가 후퇴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