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통마을에 찾아온 봄…기와집·초가 사이 꽃향기 그윽

● 경주 양동마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소박한 한옥서 하룻밤 민박
조선시대 이름난 교육열…과거 급제자만 116명 배출

"이 동네 어르신들,그냥 시골 노인이라고 보면 안 돼요.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하다고요. 그럴 만도 하죠.워낙 자식들을 잘 키워놨으니….150여가구 400여명이 사는 동네에서 사법시험 30명,외무 · 행정고시 20명이 합격했고,대학 교수가 63명,박사가 70여명 나왔으니까요. "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 이야기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문화관광해설사 김순덕 씨는 "수백 년 된 고건축물들보다 더 놀라운 건 이 동네의 교육열"이라고 했다. 마을의 양대 성씨인 여강(여주) 이씨와 월성(경주) 손씨는 따로 서당을 운영했을 정도였다. 그 결과 조선시대에만 한 마을에서 문과 26명,무과 14명,생원과 진사를 뽑는 사마시 76명 등 116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했다. 얼마나 대단한 마을인지 한번 보기로 한다. 마을은 소쿠리 모양이다. 마을의 뒷산이자 주산인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네 줄기로 뻗어내린 산등성이와 골짜기가 '勿(물)'자 모양의 지세를 이루고 있는데,마을 입구는 좁지만 들어서면 골짜기와 등성이마다 집들이 자리하고 있어 보기보다 넓다는 걸 알 수 있다. 높은 곳에는 양반이 사는 기와집이,낮은 곳에는 외거하인들이 살던 초가집들이 배치돼 멀리서 보면 한 폭의 그림 같다.

양동마을은 관람객의 동선을 고려해 하촌,물봉골,수졸당,내곡,두곡,향단 등 6개의 코스로 나눠 놓았는데 향단 코스의 첫집인 관가정(觀稼亭)부터 본다. 관가정은 조선 성종 때 명신이자 청백리로 이름난 우재 손중돈(1463~1529)이 분가해 살던 집이다. 관가정이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실제로도 그랬다.

여강 이씨가 살던 이 마을에 월성 손씨가 들어온 것은 입향조(入鄕祖)인 손소(1433~1484)가 청송 안덕에서 처가 동네로 이주하면서다. 손소의 둘째딸은 성균생원 이번과 결혼했는데 이번 또한 영일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들의 맏아들이 동방5현(五賢)의 한 사람이자 영남사림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회재 이언적(1491~1553)이다. 이후 두 성씨는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며 양동마을을 일궈냈다. 관가정에서 나와 또 다른 등성이로 올라가면 보물 제412호 향단(香壇)이 있다. 지붕 구조가 화려한 이 건물은 이언적이 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때인 1543년 병든 노모를 가까이서 돌볼 수 있도록 중종이 지어준 집이다. 원래 99칸의 화려한 집이었으나 허물어져 1976년 보수하면서 56칸으로 줄었다.

마을에는 이처럼 지은 지 500년이 넘는 기와집이 54채나 있다. 이씨 문중의 서당인 강학당,손씨 문중의 서당인 안락정,1508년에 지은 여강 이씨의 종가인 무첨당,손소가 세조 3년(1457년)에 지은 마을 안골 중심지의 월성 손씨 종가집 서백당,근암고택,상춘헌고택,사호당고택,두곡고택….

마을 전체가 고건축 전시장이나 다름없다. 기와집마다 집을 짓고 살았던 이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개발하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콘텐츠의 보고(寶庫)다. 또한 기와집마다 3~5채의 초가집이 딸려 있어 여유롭게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구경하기에 딱 좋다. 양동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오래된 건축물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이 전통문화를 계승하며 고유한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가의 격식과 반가의 법도가 살아 있다는 얘기다. 기와집에 딸린 초가집들은 원래 외거하인들이 살던 곳이지만 지금 사는 사람들과는 무관한 옛날의 일일 뿐이다.

끼니 때가 되자 밥 짓는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민박 겸 식당을 운영하는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설창산 맞은편의 성주봉에 오르면 양동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네에는 개나리,산수유,목련,백매화,홍매화 등이 한껏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산자락에 드문드문 핀 진달래를 벗 삼아 성주봉에서 문필봉,두곡고택으로 이어지는 둘레길을 산책하는 여유는 덤이다.


◆ 여행팁대중교통으로 양동마을 가기가 참 편해졌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2시간 정도면 신경주역에 내린다. 여기서 203번 버스를 타고 경주역에서 북동쪽으로 20㎞쯤 가면 양동마을이다.

올해 일흔여섯인 장세주 할머니 집 등에선 양동마을 특산물인 쌀엿,조청,약과,유과,청주,된장 등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살 수도 있다. 회재 선생의 17대손인 이지휴씨가 운영하는 우향다옥식당(010-6257-6097)을 비롯해 식당 5곳,민박집 10여 곳이 있다. 마을 초입에 있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집에 요청하면 마을에 대한 설명도 해 준다. 양동마을 홈페이지(http://yangdong.invil.org) 참고.

경주=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