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정현 네비스탁 대표 "겉 멀쩡해도 속 썩은 기업 골라내야"
입력
수정
사업보고서 제출로 12월결산법인 중 상장폐지 기업 명단이 공개되자 지분 공시에서 '네비스탁'이란 이름이 눈에 띄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네비스탁은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모아 주주 권리 찾기 운동을 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다. 보유 주식이 상폐 위기에 처하자 네비스탁에 의결권을 맡기는 주주들이 많아진 것. "감사보고서 제출이 끝나고 나면 주주모임이 급증하긴 하지만 사실 이 때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이 상장 폐지에 이르기 전에 경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감시하는 일이죠. 네비스탁은 불을 끄기보다는 불을 보고 '불이야'하고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김정현 네비스탁 대표이사(사진)의 말이다. 지난 11일 오후에 찾은 네비스탁 사무실에는 상담을 원하는 주주들의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오고 있었다.
◆ 소방수 아닌 '워치독'(watchdog)최근 많이 바쁘지 않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주가가 이미 100~200원인 한계기업보다 겉은 멀쩡한데 속이 썩고 있는 기업이 더욱 문제"라며 "평상시에 기업 경영을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네비스탁이 발간하고 있는 것이 '칸(CARN)' 보고서다. 매수를 권하는 증권사의 리포트와 달리 칸은 기업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최근 대표가 자살에 이르러 관심을 모은 씨모텍에 대해서도 지난 10월 칸 보고서가 발간됐었다. 씨모텍의 최대주주인 나무이쿼티는 현재 씨모텍과 자회사 제이콤의 회사 자금 총 538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칸 보고서에는 "나무이쿼티는 기업간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전혀 알려진 바가 없는 신생기업으로 회사가 영위하고 있는 정보기술(IT)분야에서의 경영역량과 나무이쿼티에 270억원의 자금을 대여한 채권자들에 대한 상세 정보 등 나무이쿼티와 관련한 상당부분이 베일에 가려져있다"며 "나무이쿼티의 회사 경영과 관련해 지속적인 관찰이 요구된다"고 기술돼 있다. 네비스탁은 현재 자료를 보충해 씨모텍에 대한 보고서를 새로 발간할 예정이다.
그런데 칸 보고서를 보고 기업 경영에 이상을 느낀 주주가 주식을 팔아버리면 더 이상 주주 운동을 전개할 수가 없는 게 아닐까. 이러한 아이러니에 대해 김 대표는 "저도 그랬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주식과 사랑에 빠져버린다"고 말했다. '내가 갖고 있는 주식만큼은 상폐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문제점을 인식하고서도 손절매에 나서는 게 쉽지는 않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실제로 자신이 들고 있던 기업의 주식이 상폐당한 것을 계기로 소액 주주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경영 상태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면 파는 게 맞을 때도 있지만 개선 가능성이 있다면 장부를 열람해보거나 경영진과 만나 경영 방향에 대해 협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전했다. ◆ 소액주주의 힘, 케이씨피드·동산진흥 등 성과
김 대표는 유통주식을 늘리기 위해 지난달 케이씨피드의 정기주주총회에 10 대 1 액면분할을 건의해 통과시킨 것을 최근의 성공 사례로 꼽았다.
씨모텍처럼 상장폐지가 기정사실화 된 경우에는 네비스탁이 채권단과 협상에 나서기도 한다. 김 대표는 "회사를 청산하게 되면 주주들은 투자금 회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에 채권단에게 회사를 살려 이익을 나눠갖자고 제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2월에 상폐된 동산진흥의 경우 주주들이 100% 지분을 인수해 경영하고 있다. 현재 사명도 '동산진흥주주모임'으로 바꿨다. 김 대표는 다만 "주주가 회사를 직접 경영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법정관리도 나쁘진 않다"고 조언했다.
수백명의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김 대표는 "어떨 때는 의견이 정확히 반으로 갈리기도 한다"며 "이 경우 주주들끼리 협의를 통해 의견을 모으도록 권한다"고 말한다. 주주들의 결정이 네비스탁이 지향하는 방향과 너무 다를 때는 주주 운동에서 손을 떼기도 한다. 그는 "우리는 돈이 아니라 평판을 중요시하는 곳"이라며 "소액주주 운동이 실패로 끝나거나 어긋난 방향으로 가면 우릴 찾는 사람이 점차 없어지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현재 네비스탁은 '칸' 보고서 열람은 유료, 주주 운동 상담은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칸 보고서는 1부당 3~10만원이다. 김 대표는 "가격은 작성에 얼마나 많은 품을 들였는가, 얼마나 정보가 들었는가를 고려해 결정했다"며 "2년 전 회사가 경영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면 최소 지난 5년간의 재무제표를 살펴보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장부 열람 신청 등 간단한 소송은 네비스탁이 직접 하기도 하지만 소송 규모가 커지면 주주들이 소송 비용을 모은다.
한국 증권 시장에서 개선돼야 할 점을 묻자 김 대표는 "금융당국이 보다 빨간불을 자주 켜줬으면 한다"고 주저 없이 말했다. 그는 "횡령이나 분식은 일반인들이 알아내기 힘든데 이 때문에 상폐되면 결국 피해를 입는 건 일반투자자"라며 "(당국이 시장 감시에) 한발씩 늦는다"고 아쉬워했다.
한경닷컴 정인지 기자
네비스탁은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모아 주주 권리 찾기 운동을 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다. 보유 주식이 상폐 위기에 처하자 네비스탁에 의결권을 맡기는 주주들이 많아진 것. "감사보고서 제출이 끝나고 나면 주주모임이 급증하긴 하지만 사실 이 때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이 상장 폐지에 이르기 전에 경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감시하는 일이죠. 네비스탁은 불을 끄기보다는 불을 보고 '불이야'하고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김정현 네비스탁 대표이사(사진)의 말이다. 지난 11일 오후에 찾은 네비스탁 사무실에는 상담을 원하는 주주들의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오고 있었다.
◆ 소방수 아닌 '워치독'(watchdog)최근 많이 바쁘지 않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주가가 이미 100~200원인 한계기업보다 겉은 멀쩡한데 속이 썩고 있는 기업이 더욱 문제"라며 "평상시에 기업 경영을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네비스탁이 발간하고 있는 것이 '칸(CARN)' 보고서다. 매수를 권하는 증권사의 리포트와 달리 칸은 기업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최근 대표가 자살에 이르러 관심을 모은 씨모텍에 대해서도 지난 10월 칸 보고서가 발간됐었다. 씨모텍의 최대주주인 나무이쿼티는 현재 씨모텍과 자회사 제이콤의 회사 자금 총 538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칸 보고서에는 "나무이쿼티는 기업간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전혀 알려진 바가 없는 신생기업으로 회사가 영위하고 있는 정보기술(IT)분야에서의 경영역량과 나무이쿼티에 270억원의 자금을 대여한 채권자들에 대한 상세 정보 등 나무이쿼티와 관련한 상당부분이 베일에 가려져있다"며 "나무이쿼티의 회사 경영과 관련해 지속적인 관찰이 요구된다"고 기술돼 있다. 네비스탁은 현재 자료를 보충해 씨모텍에 대한 보고서를 새로 발간할 예정이다.
그런데 칸 보고서를 보고 기업 경영에 이상을 느낀 주주가 주식을 팔아버리면 더 이상 주주 운동을 전개할 수가 없는 게 아닐까. 이러한 아이러니에 대해 김 대표는 "저도 그랬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주식과 사랑에 빠져버린다"고 말했다. '내가 갖고 있는 주식만큼은 상폐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문제점을 인식하고서도 손절매에 나서는 게 쉽지는 않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실제로 자신이 들고 있던 기업의 주식이 상폐당한 것을 계기로 소액 주주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경영 상태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면 파는 게 맞을 때도 있지만 개선 가능성이 있다면 장부를 열람해보거나 경영진과 만나 경영 방향에 대해 협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전했다. ◆ 소액주주의 힘, 케이씨피드·동산진흥 등 성과
김 대표는 유통주식을 늘리기 위해 지난달 케이씨피드의 정기주주총회에 10 대 1 액면분할을 건의해 통과시킨 것을 최근의 성공 사례로 꼽았다.
씨모텍처럼 상장폐지가 기정사실화 된 경우에는 네비스탁이 채권단과 협상에 나서기도 한다. 김 대표는 "회사를 청산하게 되면 주주들은 투자금 회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에 채권단에게 회사를 살려 이익을 나눠갖자고 제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2월에 상폐된 동산진흥의 경우 주주들이 100% 지분을 인수해 경영하고 있다. 현재 사명도 '동산진흥주주모임'으로 바꿨다. 김 대표는 다만 "주주가 회사를 직접 경영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법정관리도 나쁘진 않다"고 조언했다.
수백명의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김 대표는 "어떨 때는 의견이 정확히 반으로 갈리기도 한다"며 "이 경우 주주들끼리 협의를 통해 의견을 모으도록 권한다"고 말한다. 주주들의 결정이 네비스탁이 지향하는 방향과 너무 다를 때는 주주 운동에서 손을 떼기도 한다. 그는 "우리는 돈이 아니라 평판을 중요시하는 곳"이라며 "소액주주 운동이 실패로 끝나거나 어긋난 방향으로 가면 우릴 찾는 사람이 점차 없어지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현재 네비스탁은 '칸' 보고서 열람은 유료, 주주 운동 상담은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칸 보고서는 1부당 3~10만원이다. 김 대표는 "가격은 작성에 얼마나 많은 품을 들였는가, 얼마나 정보가 들었는가를 고려해 결정했다"며 "2년 전 회사가 경영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면 최소 지난 5년간의 재무제표를 살펴보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장부 열람 신청 등 간단한 소송은 네비스탁이 직접 하기도 하지만 소송 규모가 커지면 주주들이 소송 비용을 모은다.
한국 증권 시장에서 개선돼야 할 점을 묻자 김 대표는 "금융당국이 보다 빨간불을 자주 켜줬으면 한다"고 주저 없이 말했다. 그는 "횡령이나 분식은 일반인들이 알아내기 힘든데 이 때문에 상폐되면 결국 피해를 입는 건 일반투자자"라며 "(당국이 시장 감시에) 한발씩 늦는다"고 아쉬워했다.
한경닷컴 정인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