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정부와 지자체, 누가 약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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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甲)과 을(乙)의 관계인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반대인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와 한국은행 간의 관계가 그렇다. 한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관 대(對) 기관으로 따지면 한은이 '갑'일 때가 많다. 정부와 다툼을 벌일 때면 한은은 늘 우위에 선다. 사회는 정서적으로 약자 편에 선다는 점을 십분 활용한 덕분이다. 게다가 정치권도 주로 한은 편을 든다. 한은법 개정안을 둘러싼 다툼에서 한은쪽 손을 들어준 것이 대표적이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전직 관료는 한은에 대해 "다윗을 가장한 골리앗"이라고 했다.
뒤바뀐 갑 · 을 관계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에도 나타난다. 최근 취득세 인하 소동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재정구조에서 지자체는 중앙정부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생존 불가능한 '을'이다. 중앙정부가 내국세의 19.24%를 지방교부세로 나눠주고,각종 보조금도 지원한다. 교부세만도 연간 30조원에 달한다. 중앙정부 지원액은 지자체 전체 재정의 평균 40%를 차지한다. 이런 구조 때문에 국내에서 연간 걷히는 총 세수 중 국세와 지방세 비중은 8 대 2지만 지출 비중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4 대 6으로 역전된다. 중앙정부는 총 예산의 절반 이상을 지방에 넘겨주면서도 예산이 잘 쓰여지고 있는지를 관리 감독할 권한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툼이 있을 때는 언제나 지자체가 큰소리친다. 중앙정부는 항상 내 주고 양보해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된 취득세 인하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방정부의 주요 세수인 취득세 인하 문제를 지자체와 상의없이 발표한 것은 분명 실수다. 그렇다고 취득세 인하로 인해 감소하는 세수분 전액을 중앙정부에 떠안긴 것은 '을'의 입장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취득세 인하로 거래가 두 배 이상 늘어나면 세율 인하분(주택가격 9억원 초과의 경우 4%→2%,9억원 이하는 2%→1%)을 감안하더라도 지방정부가 걷게 되는 세수 절대액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거래가 늘어나면 그만큼 중앙정부가 보전해 주는 금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중앙정부 입장에선 혹 하나 떼려다 두 개를 붙인 형국이다.
'을'이 '갑'으로 뒤바뀔 때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정치의 힘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저녁 취득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당 · 정 · 청 15인 회동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나홀로 반대 속에 '전액 보전'을 서둘러 결론내린 것도 차제에 돈을 더 따내려는 지자체의 열망과 4 · 27 재 · 보선을 앞두고 지방 민심 달래기가 필요한 여권,그리고 청와대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국회는 당 · 정 · 청이 합의한 취득세 인하안을 12일 통과시키면서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지자체 중심의 지방재정 건전화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기로 한 것이다. 보나마나 과세권과 세율 조정권을 상당 부분 지자체로 넘기자는 주장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과세권을 둘러싼 일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정해진 돈을 중앙정부나 지자체 둘 중 누가 쓰든 국민 입장에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상관없다'는 답이 나오려면 지방정부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자체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쓴다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호화청사 사례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지자체 예산을 메워주느라 중앙정부 곳간이 비게 되면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벌충해야 한다.
정종태 경제부 차장 jtchung@hankyung.com
뒤바뀐 갑 · 을 관계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에도 나타난다. 최근 취득세 인하 소동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재정구조에서 지자체는 중앙정부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생존 불가능한 '을'이다. 중앙정부가 내국세의 19.24%를 지방교부세로 나눠주고,각종 보조금도 지원한다. 교부세만도 연간 30조원에 달한다. 중앙정부 지원액은 지자체 전체 재정의 평균 40%를 차지한다. 이런 구조 때문에 국내에서 연간 걷히는 총 세수 중 국세와 지방세 비중은 8 대 2지만 지출 비중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4 대 6으로 역전된다. 중앙정부는 총 예산의 절반 이상을 지방에 넘겨주면서도 예산이 잘 쓰여지고 있는지를 관리 감독할 권한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툼이 있을 때는 언제나 지자체가 큰소리친다. 중앙정부는 항상 내 주고 양보해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된 취득세 인하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방정부의 주요 세수인 취득세 인하 문제를 지자체와 상의없이 발표한 것은 분명 실수다. 그렇다고 취득세 인하로 인해 감소하는 세수분 전액을 중앙정부에 떠안긴 것은 '을'의 입장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취득세 인하로 거래가 두 배 이상 늘어나면 세율 인하분(주택가격 9억원 초과의 경우 4%→2%,9억원 이하는 2%→1%)을 감안하더라도 지방정부가 걷게 되는 세수 절대액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거래가 늘어나면 그만큼 중앙정부가 보전해 주는 금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중앙정부 입장에선 혹 하나 떼려다 두 개를 붙인 형국이다.
'을'이 '갑'으로 뒤바뀔 때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정치의 힘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저녁 취득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당 · 정 · 청 15인 회동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나홀로 반대 속에 '전액 보전'을 서둘러 결론내린 것도 차제에 돈을 더 따내려는 지자체의 열망과 4 · 27 재 · 보선을 앞두고 지방 민심 달래기가 필요한 여권,그리고 청와대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국회는 당 · 정 · 청이 합의한 취득세 인하안을 12일 통과시키면서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지자체 중심의 지방재정 건전화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기로 한 것이다. 보나마나 과세권과 세율 조정권을 상당 부분 지자체로 넘기자는 주장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과세권을 둘러싼 일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정해진 돈을 중앙정부나 지자체 둘 중 누가 쓰든 국민 입장에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상관없다'는 답이 나오려면 지방정부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자체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쓴다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호화청사 사례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지자체 예산을 메워주느라 중앙정부 곳간이 비게 되면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벌충해야 한다.
정종태 경제부 차장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