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자 비결은 '스트레스리스 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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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 '리클라이너 의자' 세계 1위…노르웨이 공장 가보니
< 스트레스리스 워크 : 스트레스 없는 업무 >
생산속도 너무 빠르지 않게…직원 스트레스 줄여 불량 없애
연봉 노르웨이 최고 수준…부부ㆍ3代가 함께 근무하기도
199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미국을 방문할 때 일이다. 당시 GM은 미국 정부로부터 '포프-모바일'(차량 지붕 높이에 의자가 설치된 교황의 이동차량)을 만드는 주문을 받았다. GM은 연로한 교황을 위해 안락함과 안전에 초점을 맞췄고 이를 위해 캐딜락의 최고급 차종인 드빌을 개조했다. 그리고 차량 지붕 위에 놓일 의자를 찾기 위해 전 세계 명품 의자 수십여개를 가져다 테스트했다. GM이 선택한 의자는 노르웨이의 한 소도시에서 생산된 의자 '스트레스리스'였다.
고급 리클라이너(등받이가 뒤로 접혀지는) 의자 세계 1위 브랜드 스트레스리스는 노르웨이 서해안의 소도시 시킬번에서 전량 생산된다. 수려하게 펼쳐진 시킬번피요르드 사이에 의자생산업체 에코르네스의 공장 5곳이 아늑하게 자리잡았다. 에코르네스는 종업원 1000명,매출 5000억원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45개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이다. 영업이익률도 20%에 이른다. 에코르네스 본사에서 가장 처음 맞닥드리는 것은 하루 생산량을 알리는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공장 곳곳에 있는 이 모니터에는 하루 목표량과 현재 생산 개수,남은 개수가 실시간으로 표시돼있다. "고가 브랜드답지 않게 생산량 달성에 치중하는구나"하는 생각은 올빈 톨렌 사장의 말을 듣는 순간 여지없이 깨졌다. "생산량 표시는 직원들이 서두르지 않게 도와줍니다. 생산속도가 너무 빠르면 제품에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죠."
스트레스리스(stressless · 스트레스없이 편안한)는 그 이름에 걸맞게 철저하게 편안함에 초점을 맞췄다. 기능성이나 디자인 등을 배제한 채 오로지 사용자들에게 안락함을 주는 데 40년간 한 우물을 팠다. 이를 위해 원자재도 헝가리산 원목,핀란드 철재,그리고 브라질 및 이탈리아의 가죽 등 전 세계에서 엄선해 들여온다. 톨렌 사장은 "실제 가구 제작에 쓰이는 자재들은 또 한번 선택된다"며 "가죽 중 상태가 안 좋은 30%가량은 중국으로 재수출돼 지갑 등의 재료로 쓰인다"고 설명했다. 트렌드를 외면하는 이 같은 우직함은 아이로니컬하게 명품가구가 득실되는 북유럽에서도 이 회사가 고성장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에코르네스는 수려한 주변 풍광 못지않게 복지도 파격적이다. 근로자 평균 연봉은 8000만원.연말 인센티브를 합하면 1억원을 웃돈다. 고소득 국가인 노르웨이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회사가 노르웨이 가구회사들의 연봉 동향을 직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알려줄 정도로 자신감에 차있다. 정년은 67세로 설립후 단 한 차례의 구조조정도 없었다. 18세부터 일할 수 있어 부부나 3대가 같이 근무하기도 한다. 이를 반영하듯 점심시간이 되면 사내 뷔페식당에 어린이들이 가득하다. 톨렌 사장은 "남편이 오전(6시30분~1시30분)에 일을 한 후,가족이 사내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고 오후(1시30분~8시30분)에 일하는 부인과 맞교대해 아이를 돌보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시킬번 인구 7000명 중 1000명이 이곳에서 일하다보니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에도 적극적이다. 시킬번피요로드를 끼고 들어선 200척 규모의 요트 선착장은 에코르네스가 만든 것이다. 피요르드 사이를 잇는 300m 길이의 다리도 놓았다. 어린이들을 위해 마을에 두 곳의 수영장을 지었다. 물은 가구를 만들고 남은 우드칩으로 데운다. 매년 축구대회,스키 축제도 개최하고 있다. 청정지역인 이곳의 오염을 막기 위해 플라스틱 발포시에 프레온가스 대신 물을 사용하고 가구 생산에 흔히 사용되는 폴리염화비닐(PVC)도 없애는 등 친환경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톨렌 사장은 "고객에게 '편안함'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먼저 기업 정신을 공유해야 한다"며 "스트레스리스는 '스트레스리스 워크(스트레스 없는 업무)'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시킬번(노르웨이)=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