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 뒤집어 읽기] 근면혁명 통해 '맬서스의 질곡' 탈출
입력
수정
17세기 유럽·일본에도 '새마을운동' 있었다산업혁명 이전의 경제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맬서스(Malthus)적 질곡'이다. 이는 《인구론》의 저자 맬서스의 주장을 빌려 인구와 농업 생산 사이의 길항관계(拮抗關係 · trade-off)를 설명하는 것이다.
여성·아이들까지…노동력 총동원
농업 생산성 늘면서 도시화 '촉진
자본 투입·기술진보 없이 경제성장
토지가 제한돼 있고 기술 수준이 고정돼 있을 때 자본과 노동을 많이 투입하면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가 증가하면 더 많은 노동력이 농업에 투입되지만 생산성이 하락해 생활수준이 저하되고 결국 인구 감소가 뒤따른다. '인구 감소'라는 이 평범한 표현의 실상은 인육을 먹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기근에 시달리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굶어죽는 것을 뜻한다. 14세기와 17세기 유럽에서 벌어진 기근과 질병,전쟁 등의 위기 상황은 그와 같은 맬서스적 동력이 작동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사실은 단순히 맬서스적인 힘이 작동했다는 점보다도 그 힘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작동했다는 점이다. 유럽 각국의 농업 생산성을 장기적으로 추적한 로버트 앨런(Robert Allen)은 농업혁명을 거쳐 맬서스적 질곡을 벗어나는 데 '성공한 지역'(잉글랜드와 네덜란드),'중간 정도 성공한 지역'(벨기에,프랑스),'성공하지 못한 지역'(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대부분 지역)의 세 집단으로 구분했다.
18세기에도 여전히 맬서스적 질곡을 벗어나지 못한 사회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양결핍에 시달렸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연구는 이 시대 사람들의 키의 변동을 분석한 콤로스(John Komlos)라는 학자의 연구다. 징병 대상자의 신체검사 기록을 분석한 그의 논문은 식량이 부족한 시기에 사람들의 키가 현저하게 줄었다는 점을 실증했다.
17세기 후반 프랑스 성인 남성의 평균 키가 161.7㎝였으므로 167㎝로 알려진 나폴레옹은 평균 이상이었고,따라서 '나폴레옹 콤플렉스'(키 작은 사람이 화를 잘 낸다는 주장)에 시달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맬서스적 질곡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뚫고 산업혁명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와 관련해서 살펴볼 점은 산업혁명 이전에 근면혁명(Industrious Revolution)이 선행됐다는 사실이다. 근면혁명이라는 용어는 원래 일본의 인구사 · 경제사학자인 하야미 아키라(速水融)가 일본의 17세기 농촌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말이었다. 그는 일본 농촌에서 인구 대 가축 비율이 20명당 1마리에서 100명당 1마리로 축소되는 가운데에서도 생활수준이 오히려 크게 개선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자본 비율이 줄어드는데 어떻게 경제가 더 발전할 수 있었을까. 농민들은 농서 보급과 농기구 개량,시비(施肥)의 개선 등을 통해 가축 감소에 충분히 대응했다. 이는 자본 대신 인력을 대폭 투입하는 방식으로 개선이 이뤄졌다는 것을 뜻한다. 일본의 전통적인 근면 윤리가 작용한 데다,일한 만큼 농민들의 소득이 보장되는 제도로 인해 농가에서는 모든 가족이 열심히 일했고 이를 통해 경제 발전이 일어났다는 논리다. 이는 영국식 자본집약적 산업화와 대조되는 노동집약적 경제발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왜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근면혁명 개념을 받아들여 17~18세기 유럽 경제를 설명한 드 브리스(Jan de Vries)의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 농업 생산성이 크게 증대한 지역에서는 도시화도 크게 진행됐다.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도시들은 주변 농촌 지역의 교역을 활성화시키는 상업 거점 역할을 했다. 이 지역에서는 책 거울 자명종 등 새로운 상품에 대한 욕구가 늘었고,이로 인해 경제 전체에 시장의 영향이 크게 증대했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원하는 물건들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시장에다 내다 팔 수 있는 환금작물이나 직물 같은 상품 생산에 많은 노동력을 투입했다.
지금껏 농사일을 도맡았던 젊은 남성들이 시장에 내다 팔 상품을 생산하고,그동안 생산 활동에 그리 주력하지 않았던 여성들이나 아이들이 동원돼 자가 소비할 물품을 생산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 '근면하게' 일을 하게 됐고(공급부문),사회 전체적으로 총 수요도 늘어났다(수요부문).
이는 자본의 확대 혹은 기술 수준의 향상과 같은 요소 없이 '근면'이라는 동기에 의해 경제 성장이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달리 정리하면 공급 측면의 혁신(산업혁명)이 이뤄지기 전에 수요 측면에서 먼저 혁명(근면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도시화와 시장의 확대,곧 분업에 의한 성장이라는 스미스(A Smith)적 발전을 뜻한다.
기술 진보 없이 단지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 생산을 늘리고,시장을 통해 상품을 구매하려는 총 수요가 늘어나는 것 역시 분명 경제 성장의 한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그 시대의 주어진 여건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했다는 것을 뜻한다.
기술 진보가 없는 상황에서 늘어난 인구가 다시 죽음의 재앙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가용한 모든 인적 · 물적 자원을 동원한 것이다. 경제사가들은 18세기 유럽 중국 인도 일본의 가장 부유한 지역들에서 모두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러나 이것이 최종적인 해답이 될 수는 없다. 토지와 삼림 등 기존 자원을 최대한 이용한다는 것은 결국 생태환경에 대한 과도한 부담을 의미한다. 이 상태를 벗어나는 돌파력은 석탄이나 전기 같은 새로운 에너지의 개발과 그를 이용한 기계적 힘을 통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전통경제에서 최종 발전 단계에 도달한 인류는 그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인간의 근면이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동력과 새로운 경제 방식이 필요했다. 그 돌파구를 연 것이 바로 유럽의 산업혁명이었다.
주경철 <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