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수부 폐지보단 운영의 묘 살려야

불신 문제가 존폐 문제로 확대 돼
국민뜻에 맡겨 소모적 논쟁 말길
사법개혁의 바람이 거세다. 지난 정부 때와는 달리 입법권을 쥔 국회가 주도하며 개혁의 대상인 검찰이나 사법부의 항변은 들어보나마나라는 기세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 중 검찰 개혁과제로는 중수부 폐지 문제가 핵심쟁점이 되고 있다. 중수부 폐지란 대검찰청에 설치된 중앙수사부가 일선지검의 수사를 지도만 할 수 있도록 하되 직접 수사에 나서지 못하도록 관련 법령에 못박겠다는 것이다. 중수부가 가지는 상징성 때문에,중수부 폐지 문제가 거론되는 것만으로 검찰은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중수부가 생긴 이래 30년 동안 나서고 물러서는 것을 쭉 지켜 보았고,한때 중수부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 폐지의 벼랑 끝으로 몰렸지만,한때는 국민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으며 성역 없는 수사로 권력형 비리를 파헤치고 정경유착의 고질적 고리를 끊는 데는 역시 중수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물론 몇몇 사건에서는 몸통은 덮고 깃털만 잡았다,외부 눈치를 본 표적 수사,축소 수사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던 때도 있었다. 중수부 수사에 지휘책임을 지고 검찰총장이 물러난 적도 있었다. 그런 영욕이 교차하는 가운데,일찍부터 검찰 내부에서도 일선 지검의 특수부를 제치고 수사 결과에 따라 검찰총장이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엄청난 위험부담을 중수부가 스스로 짊어질 필요가 있느냐를 두고 많은 논란이 거듭됐다. 회의론이 우세한 적도 있었지만,그러다가 대형 비리가 터져 여론이 중수부가 나서야 한다고 몰아붙이면,그런 회의론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수사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려고 나서는 총장이냐에 따라,그리고 중수부가 나서길 강력하게 요구하는 사건이 터지느냐에 따라 전면에 부각되기도 하고 개점휴업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사랑과 질타를 모두 받으며 그래도 필요한 기구로 인정받던 중수부를 보는 시선이 이렇게 싸늘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중수부가 맡았던 문민정부 시절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나 참여정부 출범 초기의 대선자금 수사 당시 박수를 보내던 사람들조차 중수부에 등을 돌리게 만든 것은,누가 뭐래도 검찰이 자초한 것이라고 본다. 수사환경이 바뀐 점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몇 년 동안 중수부가 수사해 기소한 많은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을 어느 누가 용인한단 말인가.

중수부가 걸어온 지난날을 보면,그것이 필요한 기구로 평가 받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기구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본다. 참여정부 시절 폐지 일보 직전까지 간 중수부가 살아난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대선자금 수사를 진행하며 당시 검찰총장은 '이번 수사가 지탄받으면 스스로 목을 먼저 치겠다'라는 자세로 버텼다. 다행히도 수사 결과가 후한 점수를 받는 바람에 중수부의 폐지 시도는 무산됐다. 이와 같이 얼마든지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중수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지 않고,아예 폐지하자는 발상이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중수부를 운영하는 사람에 대한 불신임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기구 폐지로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 아닐까? 중수부의 운영 문제가 중수부의 존폐 문제로 혼동돼서도 안 되지만,그것이 마치 사법개혁의 본질인 것처럼 호도돼서도 안 된다고 본다. 중수부 폐지 같은 본질에서 벗어난 문제에 치중하다가 정작 사법개혁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검찰로서는 중수부의 폐지가 국민의 뜻이라면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소모적 논쟁을 피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본다. 중수부가 아닌 일선 지검의 부패수사를 통해 중수부의 빈자리를 메울 수도 있으니까. 그리하여 국민의 신뢰가 쌓이고 쌓이면,언젠가 중수부가 필요하다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본다.

문영호 <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