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구설수 오른 KBS '통큰 기부'

"월드컵 중계를 위해 돈을 준비했는데,중계권을 놓치는 바람에 그 돈을 모두 기부한 겁니다. " KBS는 지난해 12월 '디지털시청100%재단'에 320억원을 기부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KBS와 MBC,SBS가 작년에 열린 월드컵 중계를 위해 각각 320억원을 출연해 공동중계를 하기로 했는데,SBS가 단독으로 중계권을 가져가는 바람에 남은 돈을 기부 처리했다는 얘기다.

같은 처지였던 MBC의 처리방식은 달랐다. '남은 돈' 320억원을 회사경영에 보탰다. 이 회사의 작년 총 기부금은 30억원으로 평년 수준보다 조금 많은 정도였다. 반면 KBS의 지난해 '통 큰 기부'는 디지털재단에 그치지 않았다. KBS강태원복지재단에도 30억원을 내놨다. 지난해 기부총액은 355억원으로 한 해 전(8억여원)보다 42배나 많았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다. 기부를 통한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은 마땅히 박수받을 일이다. 그런데 KBS는 되레 '해명'에 급급한 상황이다. 예년에 비해 기부금 규모를 대폭 늘린 배경이 석연치 않아서다. '꼼수'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KBS가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수신료 40% 인상'과 무관치 않아 보이는 탓이다.

KBS의 수신료 인상 논리 중엔 '경영환경 악화'가 단골메뉴다. KBS는 지난해 순이익이 434억원으로 2009년보다 37%나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막대한 기부금 '덕분' 아니냐는 지적이다. 작년 기부금을 평년 수준으로 했다면,순이익은 1년 전보다 오히려 13%가량 늘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흑자를 축소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게 KBS의 공식 해명이지만,좋게 봐도 '오비이락' 아니냐는 게 방송가의 지적이다.

KBS가 수신료를 40% 인상하면 국민들은 가구당 매년 1만2000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 고물가로 시달리는 서민가계에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금액이다. KBS가 정말로 경영이 어렵다면,오해를 살 만한 행위보다는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 효율성 제고가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KBS의 임직원 평균 연봉은 8000만원을 넘는다. 21일 국회에서 KBS 수신료 인상안 처리가 또 미뤄진 것은 그런 국민의 소리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김재후 정치부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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