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재무설계 (4)] '은퇴=휴식' 고정관념 버리면 인생 '후반부' 더 행복하다

평균수명 10년마다 5년씩 ↑
자금문제만 매몰되지 않는 개인별 맞춤 은퇴설계 필요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있다. 은퇴설계가 다루는 범위는 삶의 후반부다. 은퇴설계의 성공 여부에 따라 삶의 성적표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중요한 은퇴설계를 놓고 대부분 주먹구구식 대응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퇴설계는 단순히 은퇴자금을 계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재무설계의 지향점은 한 개인이나 가족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퇴설계 역시 삶의 후반부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를 먼저 결정하고 그 다음 돈 문제를 다뤄야 한다. 원하는 삶의 모습이 다양한 만큼 은퇴설계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개개인의 삶이 고려되지 않은 은퇴설계는 다양성이 떨어지고 '은퇴자금'이란 돈의 문제에만 매몰되기 쉽다. ◆은퇴의 보편적 연령 기준은 65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관행대로 결정하고 처리하는 데 익숙하다. 그중에 하나가 은퇴 시기에 대한 예측과 결정이다. 사람마다 현재 상황과 은퇴생활에 대한 희망이 다르기 때문에 은퇴 예상 시기 역시 다를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은퇴시기를 구체적으로 예상하고 그에 맞춰 은퇴생활을 준비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신 사회 통념적인 은퇴 시기를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은퇴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는 공적연금 지급 시기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지급 시기는 60세다. 하지만 출생연도에 따라 지급 시기가 조금씩 조정돼 1969년생 이후에 출생한 가입자부터는 65세부터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65세는 은퇴설계와 관련한 논의를 할 때 빈번하게 등장하는 나이다. 고령화 사회의 정도를 측정하는 노인 인구가 되는 기준 나이가 65세다. 미국을 포함한 상당수 국가들의 공적연금 지급 시점도 65세다.

그렇다면 왜 65세가 대부분 국가의 공적연금 지급 시기가 됐을까. 공적연금의 65세란 숫자는 독일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철혈재상이란 별칭으로 알려진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독일통합 직후 영국보다 뒤처진 독일의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폈다. 그중 하나가 근로자들의 산업 재해에 대한 보상 및 연금정책이다.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다 죽거나 다치면 국가에서 보상을 해주겠다는 의미였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땐 국가에서 책임질 테니 열심히 일하라는 뜻도 있었다. "언제까지 일하면 국가에서 노후를 책임질 것이냐"는 질문에 비스마르크는 '65세'라고 답변했다. 당시 유럽 남성의 평균 수명이 40대 중반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금을 받기도 전에 사망했다. 당시 독일정부는 지금처럼 연금 지급으로 인한 적자 재정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평균 수명 10년마다 5년씩 늘어



요즘 시대에 은퇴 예상 시점을 65세로 잡는 것은 적절한 가정일까. 전 세계적으로 공적연금의 고갈 문제는 심각하다. 평균 수명이 연장되고 있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1979년 65.2세였다. 지금도 평균 수명이 이때와 같다면 연금 재원이 부족할 리 없다. 하지만 수명은 계속 늘고 있다. 20년 전인 1989년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70.8세였고 10년 전인 1999년엔 75.6세,그리고 2009년에는 80.5세로 늘어났다. 10년 단위로 평균 수명이 약 5년씩 증가한 꼴이다. 2026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이란 예측이다.

고령화로 인한 인구 구조의 변화는 투자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1970년대 우리나라 경제의 주역은 지금 은퇴를 앞두고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였다. 이들이 젊고 경제가 성장할 때는 금리가 높았고 부동산 투자를 통해 노후를 준비할 수 있었다. 고성장기에는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 대상이 많기 마련이다.

그러나 노인 인구가 늘면 성숙 사회로 접어들게 된다. 투자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인들은 더 이상 일정 수입이 없다. 갖고 있는 돈을 지키기 위한 안정적인 투자를 선호하는 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월 200만원 받으려면 8억9000만원 필요


수명 연장과 예상 투자수익률의 변화에 따라 은퇴자금들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40세 남성이 65세에 은퇴하고 80세까지 현재 가치로 월 200만원의 은퇴자금을 필요로 한다고 가정해보자.

물가상승률을 연 4% 정도로 잡는다면 65세 시점에 8억9000만원의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80세까지 세후수익률 연 5% 정도로 운영할 때 현재 가치로 월 200만원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 80세에 남는 돈은 '제로'가 된다.

만약 80세보다 오래 살면 당연히 더 많은 은퇴자금이 필요하다. 다른 조건이 같다고 가정하고 95세까지 산다면 65세 시점에 준비해야 할 돈은 두 배에 가까운 16억7000만원이다.

이 돈을 25년간 매년 복리 5%의 세후 투자수익률로 준비하려면 매달 300만원씩 투자해야 한다. 현재 가치로 매달 200만원의 생활비를 준비하기 위해 월 300만원씩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은퇴' 고정관념 버려야…"계속 일 필요"


현실적으로 넉넉한 은퇴자금을 준비하기 어렵다면 결국 은퇴설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야 한다. 먼저 은퇴란 개념부터 다른 각도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은퇴(隱退)'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냄'으로 풀이돼 있다. 하지만 영어 'retire'는 '타이어를 갈다(re-tire)'란 의미다. 쉰다기보다 '새로운 길을 달리기 위한 준비'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제는 은퇴 시기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65세는 더 이상 노인이 아니다. 은퇴 예상시점이 될 수도 없다. 대신 65세라는 연령은 좀 더 적게 벌더라도 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보조자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기준연령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맞다.

이제 은퇴설계는 단순히 노후자금을 준비하는 차원을 넘어설 때다. 돈보다 먼저 삶의 방향을 얘기하는 은퇴설계가 돼야 한다.

최문희 한국FP협회 전문위원 fip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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