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빼라" 친인척·VIP에 영업정지 미리 알려

● 부산저축銀 특혜인출 파문 확산

평소 인출액의 10배…금감원 감독관도 통제 못해
피해자協 "힘 있는 사람만 예금 모두 찾아" 격앙
부산저축은행의 임직원들이 영업정지 사실을 미리 알고 친인척 지인 등의 예금을 부당인출한 사실이 확인돼 파문이 커지고 있다. 실명확인 없이 직접 부당인출에 가담한 것도 모자라 일부 임직원들은 평소 친분이 있는 재력가 등 소위 'VIP고객'들에게만 영업정지 가능성을 알려,이들이 영업마감 시간 이후에도 예금을 빼낼 수 있도록 도운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당일 감독관을 보내고도 영업마감 이후 5시간이 다 돼서야 지도공문을 건네는 등 직무를 방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월16일 밤엔 무슨 일이25일 금융당국이 신건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 초량동 본점에서는 지난 2월16일 영업마감 시간인 오후 4시 이후에도 100억원(309건)이 넘는 돈이 대거 빠져 나갔다. 초량본점을 비롯해 하단점,화명점,해운대센텀점 등 4곳에서 인출된 금액은 185억원(511건)에 달한다. 2010년 같은 날보다는 3배 이상,2월8일보다는 10배나 많은 금액이었다.

영업시간외 인출이 급증한 것은 일부 임직원들이 친인척과 지인,그리고 VIP고객들에게만 영업정지 사실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30만명에 달하는 예금자들은 대부분 이런 정보를 모르고 있었다. 오후 4시부터 밤 11시까지 예금인출이 계속되는 동안 금융당국은 부산저축은행 관계자들을 서울로 불러 영업정지 신청 여부를 논의하고 있었다. 직원들 중엔 자신들이 미리 고객번호표를 받아 뒤늦게 영업점에 찾아온 친인척이나 지인들에게 예금을 인출해 주기도 했다. 같은 날 영업정지됐던 대전저축은행에서도 전날의 5배가 넘는 58억원이 무더기로 빠져 나가 부당인출 의혹을 받고 있다.

◆감독당국의 부실 대처금감원은 이날 감독관 3명을 부산저축은행에 파견했지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뒤늦게 현장에서 지도공문을 보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감독관들은 오후 9시께 '업무마감을 하지 않고,고객이 내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직원에 의해 타인 고객 예금을 부당 인출해 고객계좌로 송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행위는 내부 통제시스템 상 상당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신속히 금지해 주기 바란다'는 내용의 공문을 본점 사무실에서 작성해 건넸다.

하지만 이미 영업마감 이후 5시간 동안 일부 임직원들이 부당인출을 마친데다,VIP고객들도 예금을 빼내간 뒤였다. 밤 11시까지 이어진 인출사태도 진정시키는 데 실패했다. 김장호 금감원 부원장보(저축은행서비스본부장)는 부실 대응 지적에 대해 "당시 영업정지는 순자산 부족에 따른 조치가 아니라 유동성 부족에 따른 것이었던 만큼 현장에서 감독관들이 부당대출을 가려내기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저축은행 임직원들의 위법행위 사실이 알려지자 5000만원 이상 예금자들은 "힘 있고 배경 있는 사람들만 돈을 빼내갔다"며 분노하고 있다.

류시훈 기자/부산=김태현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