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sure&] 거친 손을 제일 예뻐하는 20대 여성 "스포츠클라이밍, 버티려고 집중할때 희열"

IFSC 월드컵 볼더링 금메달…김자인 선수

균형있는 몸 만들고 지구력 기르는데 좋아
언제나 완등하는 게 목표
그의 두 손은 굳은 살로 단단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반짝이는 금빛 아이섀도를 바른,영락 없는 20대 아가씨인 그는 거친 손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제 눈에는 제 손이 제일 예뻐요. 기특해요. " 지난달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 볼더링(bouldering)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김자인 선수(23 · 노스페이스)는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지난 25일 서울 신당동 한양공업고등학교에서 만난 김 선수는 "볼더링은 주종목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우승까지 해 무척 기쁘다"며 소감을 말했다. 고려대 체육교육과에 재학 중인 그는 스포츠클라이밍 리드(lead) 부문 세계 챔피언이다. 지난해에만 리드 부문에서 5차례 월드컵 우승을 했다. 볼더링 부문에서는 세계 8위에 올라 있지만,지난달 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지금은 한양공고에서 교생실습을 하며 스포츠클라이밍 훈련을 병행하고 있다. 스포츠클라이밍은 인공암벽등반으로,세 가지 부문으로 나뉜다. 볼더링은 안전장비 없이 매트를 깔아둔 채 5m 이내의 인공암벽 4~5개를 이동해야 하는 경기다. 몇 번 추락을 해도 관계 없지만,가장 적은 시도로 모든 암벽을 탄 선수에게 금메달이 주어진다. 김 선수의 주종목인 리드는 12m 이상의 인공암벽에서 7~11분 사이로 정해진 시간 안에 누가 더 높이 오르느냐를 겨루는 경기다. 스피드(speed)에서는 IFSC에서 지정한 공식 루트 15m를 가장 빨리 오르는 선수에게 우승이 돌아간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스포츠클라이밍을 한 김 선수는 연신 자신이 하는 운동을 자랑했다. 그는 "스포츠클라이밍은 근력과 지구력을 기르는 데 좋다"며 "잔 근육을 만들 수 있어 몸매를 예쁘게 가꿀 수 있다"고 말했다. 벽면에서 몸을 움직일 때 손발에 체중을 고르게 분산시키다 보면 자연스럽게 균형 있는 몸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초보자들에 대해서도 그는 "장비를 착용해야 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암벽등반을 즐길 수 있다"며 "힘들지만 버티려고 집중할 때 느낄 수 있는 희열을 경험해보라"고 권했다.

물론 힘들 때도 없지 않았다. 2008년에는 어깨 인대가 파열됐다. 하루에 7시간씩 매일 암벽에 매달려 훈련을 거듭해야 했던 43㎏의 작은 몸이 남아날 리 만무했다. 김 선수는 "운동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꾸준한 재활훈련을 통해 몸을 회복했다"고 털어놨다. 이듬해 리드 부문 세계 2위에 오르는 등 그는 아픔을 딛고 일어났다. 2009년 파키스탄의 낭가파르바트산을 하산하던 중 목숨을 잃은 산악인 고(故) 고미영 씨와의 인연을 이야기할 때는 김 선수의 큰 눈이 촉촉해졌다. 산악활동을 하기 전 스포츠클라이밍 선수였던 고인은 2002년 국제대회에 처음 나간 김 선수에게 큰 힘이 돼 주었다.

그는 "대회를 보러 온 수많은 사람이 응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라던 미영 언니의 말을 잊을 수 없다"며 "2004년 체코 대회 때는 오심이 있었는데 대신 항변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있을 법한 징크스는 없을까. 김 선수의 징크스는 대회 당일 아침에 쌀밥을 먹으면 경기가 잘 안 풀린다는 것이다. 그는 "쌀밥을 먹으면 국내대회에서조차 2~3위를 기록하는 등 성적이 저조했다"며 "2004년부터 대회 당일 아침엔 쌀밥 대신 과일을 주로 먹는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쌀밥을 잘 먹는 '밥마니아'지만 말이다. 가장 기뻤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는 예상 밖의 답이 돌아왔다. 김 선수는 "2009년 중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리드 부문에서 2등했을 때가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1등이 아닌 2등이 기뻤던 이유는 대회에서 '완등'을 했기 때문이란다. 리드 부문은 가장 높이 올라간 사람이 우승을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완등을 하지 않아도 1등을 할 수 있다. 이재용 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감독은 "완등을 하고 1등을 하는 경우는 50% 정도"라고 설명했다.

"1등은 상대적인 거잖아요. 남들보다 많이 올라가면 1등을 하는 거지만,완등은 변하지 않는 암벽과 나와의 싸움이에요. 나를 이기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언제나 1등이 아닌 완등을 하는 게 목표예요. " 키 153㎝인 그가 어느새 더 크고 단단하게 보였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