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교수의 경제학 멘토링] 자본자유화와 핫머니

장기 차관과 외국인 직접투자 등 장기 외자는 후진국들의 경제개발에 꼭 필요하다. 그런데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선진 열강의 자본은 막강한 군사력의 뒷받침 아래 후진국의 시장과 자원을 마음껏 수탈했다. 오늘날에도 외국 자본이 국내 산업의 핵심을 장악하면 경제 주권을 빼앗긴다는 두려움이 상존하고 있다. 개도국들은 경제개발에 필수적인 장기 외자와 선진 기술 유치에 적극 나서면서도 수출 의무 부과 등 각종 규제로 국내 산업 보호에 주력해 왔다.

몇몇 개도국이 경제개발에 성공하면서 자본시장이 체제를 갖추고 발전하자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단기자금에까지 각국의 자본시장을 개방하는 자유화의 문제가 제기됐다. 장단기 자본의 이동을 자유화하면 자본은 안전하고 수익성 높은 투자처를 찾아가게 되므로 자금이 가장 생산적으로 안배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은 1980년대 초부터 자본시장 자유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하기 시작했지만 개도국들은 자본시장 규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처럼 자본자유화가 개도국들의 경제주권을 침탈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을 전후해 세계화의 시대 조류를 타고 자본자유화도 크게 진전됐다.

외국인 직접투자도 늘고,선진국의 대형 자본들은 더 높은 수익성의 금융자산을 사고팔면서 세계 각국의 자본시장을 넘나들고 있다. 소규모 국가의 자본시장은 이들이 찾아오면 엄청난 호황을 누리지만 일시에 빠져나가면 주가폭락으로 막대한 시가총액을 상실하고 국가 경제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기도 한다. 증권투자를 주목적으로 하는 단기 외자를 '핫머니 (hot money)'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소규모 국가 경제에 핫머니가 몰려들면 그 나라의 환율은 하락하고 보유 외화가 급증한다. 반대로 핫머니가 일시에 빠져나가면 환율이 상승하고 보유 외화는 감소한다. 영국도 1976년 핫머니가 대거 이탈함에 따라 외화보유액이 급감,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로 전락한 적이 있다. 핫머니는 단기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국별 금리차이와 환율변동,그리고 각국의 경제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불리해 보이는 나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유리해 보이는 나라로 신속하게 옮겨가는 핫머니는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을 오히려 키우는 결과를 불러왔다.

자본자유화를 추진할 때 기대한 것은 자금의 효율적 이용이었으나 핫머니의 민감한 국제 이동의 결과는 오히려 예기치 못한 불안정성과 위험이었다. 지금은 자본자유화의 전도사인 IMF조차 핫머니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