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수주서 비자까지…명예영사 121명의 민간 외교

문화교류·이민주선·방한사절 대접…무보수로 뒷바라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구자준 LIG손해보험 회장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본업 외에 '명예영사'라는 명함이 하나 더 있다. 각각 브라질 마다가스카르 니카라과의 '민간 외교 첨병'이다.

최근 하춘수 대구은행장이 주한 이탈리아 명예영사에 임명되면서 기업인의 민간 외교활동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교통상부가 파악하고 있는 주한 명예 총영사 및 영사,부영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은 104개국 총 121명이다. 이 중 99%가 기업인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기업인은 활동 범위가 넓고 재력도 뒷받침되기 때문"이라며 "이들의 활동은 수출 증진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가 해당국과의 인연 때문에 명예영사가 됐다. 임기는 5년이지만 대부분 연임한다. '최고참'은 34년째 아이슬란드 명예총영사를 맡고 있는 조해형 나라홀딩스 회장이다. 조 회장은 "쌍용제지 사장이던 1970년대 박동진 당시 외교부 장관이 잠깐 보자고 해 갔다가 얼떨결에 임명됐다"며 "당시는 정부가 수출을 늘리기 위해 주로 종합상사 사장들에게 명예영사 자리를 주선했다"고 말했다. 아이슬란드에 대한항공 중고 비행기를 수출하는 계기를 마련한 그는 명예영사단 단장이다.

크로아티아 명예영사인 양인모 삼성엔지니어링 고문은 2004년 삼성물산이 항구도시 리헤카의 항만 현대화사업을 맡았을 때 인연을 맺었다. 크로아티아가 현명관 당시 삼성물산 회장을 명예영사로 임명했고,현 회장이 은퇴하면서 양 고문이 자리를 물려받았다.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은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에 약을 무상 지원하다가 명예영사가 됐다. 솔로몬아일랜드 명예영사인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겸 전국경제인연합회 비상근 부회장은 이 회사가 현지에 여의도 면적 90배의 땅을 사 조림사업을 하면서 병원과 미술관을 짓고 장학재단도 만들었다. 이 밖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그리스),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칠레),김영대 대성 회장(에콰도르),구자두 LG벤처투자 회장(엘살바도르),고호곤 삼성공조 회장(피지),이용이 영원무역 사장(방글라데시),이충구 유닉스전자 회장(그레나다),권영호 인터불고그룹 회장(앙골라) 등이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명예직인 만큼 월급은 따로 없다. 반면 돈 쓸 일은 많다. 집무실 옆을 명예영사관으로 내놓고 상주 직원을 고용해 비자 발급 등의 업무를 한다. 현지에서 방한 사절이 오면 식사를 대접하고 면담을 주선하는 등 '뒷바라지'도 한다. 그 나라 근로자가 사망했을 때 장례비와 절차를 도맡기도 한다.

명예영사들의 활약은 우리 재계의 도약으로 이어진다. LS전선은 베트남에서만 매년 2억3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에 고무된 구자열 LS전선 회장은 지난해 7월 경기 안양시 LS타워에 '명예영사관'을 개관,베트남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요르단 명예영사인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은 매년 요르단 독립기념일이 되면 명예영사 이름으로 국내 영자지에 축하 광고를 게재한다. 명예영사들은 "일을 하다 보면 그 나라와 자연히 정이 들고 사명감도 생긴다"며 "우리 국력 증대와 산업 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누리는 혜택은 임명국을 방문할 때 공항에서 영접 서비스를 받는 정도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