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體로 풀어낸 전통과 현대의 조화…"긴장감 즐겨요"

반추상화가 이광춘 씨 개인전
중국 헤이룽장성 출신의 동포 3세 화가 이광춘 씨(52 · 경기대 교수)의 개인전이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이씨는 관념적이고 실험적인 반추상화와 인물화 작업을 병행해왔다.

2009년 한국으로 귀화한 그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건희 삼성 회장 부부 등 정치 · 문화 · 경제계 인사들의 초상화를 그려 주목을 받았다. 내달 3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전통과 현대의 하모니'.여인의 형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단절을 묘사한 반추상화 30여점을 걸었다.

그의 작업은 외적 형상보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취지상외(取之象外)'에 주안점을 둔다. 근작 '단열'(사진) 시리즈와 '무극-구항' 시리즈는 중국 당나라 시인 왕유가 언급한 미의 개념인 '의상(意想)'을 현대적인 회화 기법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화면에 물방울 같은 원형의 기포들을 활용해 여체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지워나가면서 현대인의 복잡한 상황을 분열과 균열,해체로 묘사했다. 사람의 모형을 본떠 만든 토용,누드,물방울 등 사실적 대상에 선과 면의 비구상적 요소를 대립적으로 배치해 사물의 본질을 되살려냈다. 이씨는 "제 회화 작업들은 형상이 소멸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시간의 흔적을 녹여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전의 형상이 오늘날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것을 여인의 누드를 통해 그려낸 것이 대표적이다. 신체의 아름다운 외형보다 파괴된 부분 등 몸의 파편화를 통해 전통과 다른 현대 문명의 명암을 그렸다고 그는 얘기한다.

화면 위에는 여체를 중심으로 색면과 선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어떤 여인의 누드는 배경에 파묻힌 듯,어떤 것은 배경 위에 살짝 얹혀 있는 듯하다.

그는 "현대 사회의 형식과 모든 것이 변해도 본질,혹은 근본을 잃지 말아야 한다"며 "여체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아름다운 에로티시즘으로 빛나기 때문에 주요 소재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색과 면,선,여백의 요소들이 여체를 중심으로 파장을 일으키듯 절묘한 균형을 맞췄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휙휙 그려 나갈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의외로 작업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한지의 밑바탕 색을 깔고 군데군데 색이 드러나는 과정을 즐긴다"고 했다.

"어떤 색깔이 가장 잘 어울릴까 골똘히 생각하면서 작업하느라 늘 늦는 편입니다. 한 가지 색을 더 첨가할까 말까,첨가한다면 어느 위치에 어느 정도 비중으로 그려 넣을까를 깊이 느끼면서 그리는 거죠." (02)725-9467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